“실험 시작한다.”
하윤재의 목소리가 실험실 안에 메아리쳤다.
거대한 스크린에는 수많은 숫자와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변동하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시간 이동 실험을 성공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실험의 순간, 화면에 경고 메시지가 떴다.
[ERROR – 타임라인 충돌 감지]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윤재는 손에 쥔 데이터 패드를 빠르게 조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거대한 빛의 파동이 실험실을 휩쓸었다.
“윤재! 위험해!”
어딘가에서 들리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듯했다.
눈을 떠보니 그는 실험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지만 기계들은 멈춰있었고, 동료들은 흔적도 없었다. 이상한 정적 속에서 윤재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그때였다. 갑자기 시계 초침이 귀에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똑딱. 똑딱. 똑딱.”
윤재는 고개를 돌려 실험실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며칠 후, 윤재는 자신이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실험실 폭발 사고 직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있었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하루는 다시 시작되었다.
“미쳤어… 나 혼자만 이러는 건가?”
그러던 어느 날.
윤재가 반복되는 실험실 밖을 나서던 중 낯선 남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윤재 박사님.”
깊은 밤의 안개 속에서 들려온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윤재는 경계하며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고, 고요한 눈빛 속엔 묘한 슬픔이 서려 있었다.
“누구야?”
“당신을 도우러 왔어.”
그가 걸음을 내딛자, 마치 시간을 조종하듯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했다.
“나는 리안. 당신이 이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
윤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루프? 네가 뭔데 나를 돕는다는 거지?”
리안은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야.”
그 순간, 또다시 시간의 흐름이 멈췄다. 윤재는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리안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이제 선택해. 멈춰있을지,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