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는 실험실 밖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반복되던 루프에서 벗어난 세상은 낯설게 느껴졌다. 시간은 여전히 앞으로 흐르고 있었고, 공기 속에는 새로운 시작의 기운이 감돌았다.
“다시 돌아왔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묘한 해방감이 담겨 있었다.
밖으로 나서니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언제 마지막으로 이런 하늘을 본 적이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윤재는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봤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제 나는 어떤 시간을 살아야 할까.”
며칠 후, 윤재는 연구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난 그는 실험이 아닌 미래를 위한 연구를 시작하고 싶었다.
윤재는 실험실을 정리하던 중, 책상 위에서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서희의 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
그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집어 들었다.
사진 속 서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윤재는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그녀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윤재야, 후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윤재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이제 정말로 그렇게 할 거야.”
사진을 책상 위에 다시 올려두고, 그는 서류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책상 아래에서 낡은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이건…”
윤재는 호기심에 노트를 펼쳤다.
그곳엔 서희가 남긴 메모가 있었다.
짧고 간결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간은 우리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지만, 또한 다시 만나게 할 수도 있다.]
윤재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은 사실 모두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그 기억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순간, 실험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박사님,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서입니다.”
윤재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낯선 후배 연구원이었다.
그는 서류를 받아들며 조용히 말했다.
“미래를 위한 연구라… 나쁘지 않겠군.”
그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며 서류를 펼쳤다.
밤이 되자 윤재는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그의 손목시계는 이제 더 이상 거꾸로 흐르지 않았다.
윤재는 조용히 속삭였다.
“서희야, 네가 틀리지 않았어. 시간은 앞으로 나아갈 거야.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계속 살아갈게.”
별이 총총 떠 있는 하늘이 윤재를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시간 속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