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오후였다.
카페 유리창에 빗방울이 흩어졌다가 흘러내리기를 반복했다.
흐릿한 바깥 풍경 너머로 우산을 쓴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도윤은 커피 머신을 정리하며 창가 쪽을 힐끗 보았다.
현우가 앉아 있었다.
언제나처럼 바닐라라테를 앞에 두고,
책을 읽고 있었다. 종종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이 익숙했다.
‘비 오는 날에도 오는구나.’
도윤은 괜히 혼자 생각했다.
이 카페는 조용하고 아늑한 곳이었지만,
현우가 이렇게 자주 올 정도로 특별한 곳이었나 싶었다.
아니면, 단순히 습관일까?
“도윤 씨, 요즘 왜 자꾸 창가만 보세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도윤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요?”
동료는 싱긋 웃으며 도윤의 시선을 따라갔다.
“저 손님, 맨날 오지 않아요?”
“네, 단골이에요.”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드시고요?”
“…그렇죠.”
“좀 신기한 손님이에요.”
동료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도윤 씨도 신기한 것 같아요.”
“뭐라고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요.”
동료는 장난스럽게 한 마디 던지고는 주문을 받으러 갔다.
도윤은 괜히 뜨거운 커피잔을 한 번 더 닦으며 창가를 힐끗 보았다.
현우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줄어들자,
도윤은 창가 쪽 테이블을 정리하러 갔다.
현우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도윤이 다가오는 걸 보더니 자연스럽게 책을 덮었다.
“오늘도 바닐라라테?”
도윤이 묻자, 현우는 잔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네. 오늘은 유난히 달콤한 것 같아요.”
도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항상 같은 레시피인데요?”
현우는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그냥, 기분 탓인가 봐요.”
그 말이 이상하게 도윤의 머릿속에 남았다.
바닐라라테가 달콤한 이유가 단순한 레시피 때문만은 아니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기분 때문일까, 아니면…
“비 오는 날에도 오시네요.”
도윤은 테이블을 닦으며 무심한 듯 말했다.
현우는 창밖을 한 번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비 오는 날, 이 자리에서 커피 마시는 게 좋거든요.”
“왜요?”
“그냥… 창문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 말에 도윤도 모르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우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풍경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현우의 말대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도윤 씨는?”
“네?”
“비 오는 날을 좋아하세요?”
도윤은 한순간 망설였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비 오는 날을 특별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현우는 도윤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좋아해 보시는 건 어때요?”
“왜요?”
“그냥요.”
현우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웃으며 다시 책을 펼쳤다.
도윤은 그 웃음이 이상하게 머릿속에 남았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도윤은 이상하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카페 창가 자리부터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 있는 현우를 보면,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윤은 가끔 생각했다.
현우가 없는 날에도 그의 자리를 확인하는 자신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순간적인 안도감을.
그저 단골손님이라고 하기에는 신경이 쓰였다.
‘이게 뭐지…?’
하지만 도윤은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다.
어느 날, 마감을 마치고 문을 닫으려던 순간이었다.
도윤은 우산을 들고 가게를 나서다 무심코 창가 자리를 바라보았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창가 자리에는 현우가 남긴 컵이 놓여 있었다.
잔 속에는 아직도 남아 있는 바닐라라테의 향이 희미하게 퍼지고 있었다.
도윤은 그 향을 맡으며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비 오는 날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어쩌면, 바닐라라테가 조금 더 달달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