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요즘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현우와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와의 대화가 길어질수록,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한 단골손님과 아르바이트생의 관계였지만,
이제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누군가가 되었다.
도윤은 문득 궁금해졌다.
‘현우 씨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느 평범한 저녁이었다.
카페의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윤 씨, 바쁘세요?”
현우였다. 도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고,
그가 언제나처럼 카운터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뇨, 이제 슬슬 정리하려고요.”
“그럼 마감 후에 같이 산책하실래요?”
현우의 제안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랫동안 해왔던 약속처럼.
도윤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날 밤, 두 사람은 카페 근처 공원을 걸었다.
가을이 깊어지는 날씨 속에서, 바람은 선선했고
거리의 불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길, 처음 걸어보는 것 같아요.”
현우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요? 저는 자주 와요. 조용해서 좋아요.”
“그렇군요.” 현우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럼, 도윤 씨가 좋아하는 곳을 나도 알게 된 거네요.”
그 말에 도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이 관계는 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공원을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도윤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려다 실수로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종이컵을 떨어뜨렸다.
“아, 죄송해요.”
그가 허둥지둥하며 주으려 하자, 현우가 먼저 몸을 숙였다.
“괜찮아요. 제가 주울게요.”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도윤의 손을 잡아올렸다.
그 순간,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도윤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현우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놓았지만, 도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이건… 대체 뭐지?’
하지만 그에게 답을 내릴 자신이 없었다.
그날 이후, 도윤은 현우를 더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어느 날은 카페에서 일하다가도 창가에 앉아 있는
그를 몇 번씩 바라보게 되었고,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을 때도
현우가 추천했던 메뉴가 먼저 떠올랐다.
‘나는 이 감정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도윤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하는 순간에도 그의 존재는 더욱 깊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날도 카페가 한산한 오후였다.
현우는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다가 문득 도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윤 씨는 연애해 본 적 있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도윤은 커피를 내리던 손을 멈췄다.
“네? 갑자기요?”
현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그냥, 궁금해서요.”
잠시 고민하던 도윤은 솔직하게 답했다.
“있었죠. 오래 사귄 건 아니지만.”
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도윤은 그의 말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현우 씨도요?”
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네. 예전에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도윤은 예상 외의 답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아, 그렇군요.”
“그때는 정말 좋아했어요.”
현우는 커피잔을 손끝으로 굴리며 덧붙였다.
“그런데…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같이 있어도 혼자인 기분이 들었어요.”
도윤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현우의 말에는 감정을 정리하려는 듯한 흔적이 묻어 있었다.
“그럼, 지금은요?”
도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우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어떤 감정이든 쉽게 단정 짓기가 어려워서.”
그 말이 이상하게 도윤의 마음에 걸렸다.
그의 말투가,
표정이,
눈빛이.
그리고 그 순간, 도윤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지금 내 감정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