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요즘 들어 자꾸만 생각에 잠겼다.
현우가 건네는 미소,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다정한 말들,
그리고 스치듯 스며드는 온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그저 좋은 사람과 나누는 평범한 친밀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그것이 단순한 호감 이상의 감정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야. 단순히 친해졌을 뿐이야.’
그렇게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잡았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현우를 향하고 있었다.
“도윤 씨,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마감이 끝난 늦은 밤, 현우가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우 씨도요. 오늘은 꽤 오래 계셨네요.”
“그냥요. 딱히 갈 곳도 없고, 여기 있으면 마음이 편해서요.”
현우는 그렇게 말하며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을 가볍게 흔들었다.
늘 그렇듯 자연스럽고, 친절했다.
도윤은 순간적으로 그와 눈이 마주쳤다.
눈부시게 환한 것도, 깊이 가라앉은 것도 아닌 평범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도윤은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 감정을 부정하려 했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날 밤, 카페 문을 닫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이상하게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이 울렸다.
[현우 씨]
‘오늘은 늦었는데, 무슨 일이지?’
전화를 받으려던 순간, 저 앞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현우였다.
그는 길가에서 다급하게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도윤은 주저 없이 다가갔다.
“현우 씨?”
현우가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순간적으로 안도하는 기색이 스쳤다.
“도윤 씨… 여기서 뭐하세요?”
“그쪽이야말로요.”
현우는 멋쩍게 웃으며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하지만 그의 표정은 ‘별거 아닌’ 얼굴이 아니었다.
“무슨 일 있으면 말하세요.”
도윤의 말에 현우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좀 생각이 많아서요.”
현우는 말끝을 흐렸다.
도윤은 그를 더 깊이 들여다보았다.
“저한테는 말해도 돼요.”
그 순간, 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이후, 도윤은 점점 더 깊어지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괜찮은 걸까?’
‘이게 정말 맞는 감정일까?’
그는 몇 번이고 되새겼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현우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었고,
그의 미소가 보고 싶었으며,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감정을 부정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도윤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감정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며칠 후, 도윤은 출근길에 우연히 현우와 마주쳤다.
“어? 도윤 씨.”
현우가 먼저 말을 걸었다. 평소처럼 밝은 얼굴이었지만,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그는 최대한 태연한 척했지만, 자신이 어색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현우는 미묘한 시선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 씨, 요즘 피하는 것 같아요.”
도윤은 움찔했다.
“그럴 리가요. 그냥… 바빴어요.”
“정말요?”
현우는 가만히 도윤을 바라보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요.”
그 미소를 보면서, 도윤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의 감정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도윤은 혼자 남아 창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문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그는 문득 자신의 감정을 되새겼다.
‘현우 씨가 없으면, 이 공간이 너무 조용해.’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그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어쩌면 난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그 답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도윤은 창문 너머로 스치는 사람들 속에서 언젠가처럼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도윤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느껴지는 이 감정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