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는 처음 도윤을 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조용하지만 분명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바쁜 와중에도 손님 한 명 한 명을 신경 쓰는 섬세한 태도,
짧지만 다정하게 건네는 인사,
그리고 차분하면서도 예의 바른 말투.
특별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그때부터였다.
현우는 매일 그 카페를 찾았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도윤이 보고 싶어서.
처음에는 단순한 호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더 깊은 감정임을 깨달았다.
바닐라라테를 주문하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커피의 맛 때문이 아니었다.
주문을 할 때마다 도윤과 자연스럽게 시선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윤이 컵을 건네줄 때마다, 손끝이 스칠 때마다,
현우는 어리석게도 설렜다.
현우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어색해하지 않으려고, 부담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꾸준히 말을 걸었다.
"도윤 씨, 오늘도 바쁘네요."
"카페에서 일하면 늘 그렇죠."
"그래도 가끔은 쉬어야죠. 오늘은 좀 한가해 보이는데, 잠깐 앉아서 쉬셔도 괜찮잖아요."
도윤은 잠시 머뭇거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아직 해야 할 일이 좀 남아서요."
거절당했다. 하지만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바빠서일 거라고 믿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거절당하더라도, 도윤이 잠시라도 자신을 신경 써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가끔은 도윤이 먼저 눈을 마주칠 때도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일이 끝난 늦은 밤, 가끔 카페가 문을 닫고도 도윤과 함께 걷던 시간이 떠올랐다.
"저기요, 길 건널 때 신호 잘 보세요."
도윤이 무심한 듯하면서도 현우를 챙겼던 순간.
겨울이 다가올 무렵, 따뜻한 음료를 들고 공원을 걸으며 나누었던 사소한 대화들.
"현우 씨는 왜 그렇게 바닐라라테만 마셔요?"
"글쎄요. 그냥… 익숙해져서요. 도윤 씨는요?"
"저는… 쓰지만 따뜻한 커피가 좋아요."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순간들이 이렇게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줄은.
어쩌면, 그 순간부터 이미 도윤은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도윤의 태도가 달라졌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대화는 점점 짧아졌다.
"바닐라라테 주세요."
"네."
현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즘 좀 바쁜가 봐요. 피곤해 보여요."
"…그냥 일이 많아서요."
전에는 같은 질문에도 더 길게 대답해주곤 했는데.
현우는 알 수 있었다. 도윤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걸.
그 이유를 몰랐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다.
자신 때문이라는 걸.
그날 밤, 처음으로 불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현우는 더 이상 카페에 가지 않았다.
도윤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었다.
자신의 감정이 도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를 힘들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버티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얼굴,
하루 일과 중에도 불쑥 떠오르는 목소리.
바닐라라테를 만들던 도윤, 종종 손끝을 만지작거리던 습관까지도 떠올랐다.
‘보고 싶다.’
결국, 그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밤, 현우는 다시 카페 문을 열었다.
늦은 시간이었고, 손님은 없었다.
조용한 공간 속에서 도윤이 카운터에서 정리를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
현우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말했다.
"바닐라라테 주세요."
도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우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동작,
손끝의 작은 떨림,
그리고 흔들리는 눈빛.
커피가 완성되었고,
도윤이 컵을 건네려 할 때, 현우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도윤 씨."
도윤이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좋아합니다."
도윤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커피 잔에 남아 있는 온기처럼, 둘 사이의 공기도 따뜻했다.
바닐라라테의 향이 달달하게 공간을 채웠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