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도윤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한 달째였다.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며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실수하는 날이 많았다.
“아, 또 쏟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주문받은 음료를 쟁반에 올려 나르던 중, 한 잔이 기울어지며
그대로 테이블 위에 쏟아지고 말았다.
당황한 도윤은 급히 냅킨을 가져와 수습했지만,
옆 테이블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이 피식 웃었다.
“오늘만 세 번째 아닌가요?”
낯선 목소리. 도윤이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카페 단골이자, 항상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던 손님이었다.
“죄송합니다….”
도윤이 쩔쩔매며 사과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보기 드문 광경이라서요.”
말끝에 살짝 장난기가 섞인 듯했다.
도윤은 그가 마시던 커피를 흘깃 보았다.
언제나 바닐라라테.
단골손님이었던 그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혹시 바닐라라테, 많이 좋아하세요?”
그가 고개를 들었다.
“네?”
“항상 같은 걸 시키시길래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냥… 이게 제일 무난해서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도윤은 알 수 없는 호기심이 생겼다.
늘 창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언제나 바닐라라테를 주문하는 손님. 그는 어떤 사람일까?
“이름은 뭐예요?”
도윤의 돌발적인 질문에 그는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현우요. 강현우.”
그 순간부터였다.
현우와의 대화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도윤은 자연스럽게 그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현우는 매일같이 카페를 찾아왔다.
도윤은 자연스럽게 그를 인식하게 되었다.
항상 같은 자리, 항상 같은 메뉴.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현우를 향한 관심이 커져 갔다.
“바닐라라테 하나요.”
여전히 같은 주문을 하는 현우를 보며, 도윤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오늘도 바닐라라테? 질리지 않아요?”
현우는 도윤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그럼 뭐가 좋을까요?”
뜻밖의 질문에 도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메리카노는 어때요? 바닐라라테보다는 덜 달고 깔끔한 맛인데.”
현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이게 좋아요. 바닐라라테는… 조금 달콤하잖아요.”
그가 무심하게 말했지만, 도윤은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왜 하필 ‘달콤하다’는 표현을 썼을까.
그날 이후, 도윤은 현우가 카페에 오는 시간이 되면 괜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언제나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그를, 주문할 때 건네는 짧은 대화를,
그리고 바닐라라테를 마시는 모습을.
그저 단골손님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며칠 후, 카페가 한산한 오후였다.
현우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도윤은 주문이 없자 카운터 너머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항상 책을 읽고 있었지만,
도윤은 한 번도 그가 어떤 책을 읽는지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궁금해졌다.
“무슨 책 읽어요?”
도윤이 다가가자,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아, 그냥 소설이요.”
그는 책 표지를 보여주었다. 제목을 보니 익숙한 문학 작품이었다. 도윤은 조금 놀랐다.
“이런 책도 읽어요?”
“네? 왜요?”
“그냥… 왠지 딱딱한 전공 서적 같은 것만 읽을 것 같아서.”
현우는 피식 웃으며 책을 덮었다.
“재밌어요. 가끔은 이런 감성적인 이야기도 좋아서요.”
그 말을 듣고 도윤은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현우를 계속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날 이후, 현우는 단순한 손님이 아니게 되었다.
도윤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얼마 후, 도윤은 카페를 마감하고 퇴근 준비를 하던 중
문득 현우가 남기고 간 종이컵을 발견했다.
컵에는 바닐라라테의 달콤한 향이 남아 있었다.
그 향을 맡으며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 대체 뭐지?’
단순한 단골손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이상이 되어 있었다.
도윤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닐라라테가,
오늘따라 더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