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의 어둠이 더욱 짙어지던 밤, 홀 안의 공기는 무거운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불빛이 깜빡이며 잔잔했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금세 암울함으로 변해갔다. 윤지수는 강시헌과 함께 비밀 통로를 빠져나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며,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무게를 실감했다.
“이제부터 진짜 게임이 시작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발소리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의 발자국 소리, 무언가를 쫓는 듯한 숨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금속성이 섞인 소리까지. 윤지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도망치지 않고 맞서야 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강시헌은 낮은 목소리로 윤지수에게 속삭였다.
“여기, 이 복도는 감시 카메라가 없어. 이 길을 따라가면 뒷문으로 나갈 수 있어.”
그의 제안은 탈출의 한 줄기 희망처럼 들렸지만, 동시에 그들 앞에 놓인 위험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도 함께 내포하고 있었다. 윤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숨죽인 채로 복도를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복도에는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와, 어둠을 틈타 빠르게 움직이는 인물들이 보였다. 사냥꾼들은 이미 윤지수를 찾기 위해 각 방과 복도에 흩어져 있었다. 단 한순간의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녀의 심장은 마치 폭풍처럼 거칠게 뛰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윤지수는 자신만의 탈출 계획을 머릿속에서 그리며, 가까스로 눈에 들어오는 한 비밀 문틈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윤지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 문틈 사이로 비추는 희미한 불빛 아래, 한 사냥꾼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그의 발걸음은 차가웠고, 눈빛은 무자비해 보였다. 윤지수는 숨을 죽이고 그 자리를 지켜보았다.
저택의 중앙 홀에서는 이미 다른 참가자들이 공포에 떨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지수는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혼란 속에서도 자신이 당한 운명의 무게를 한층 더 뼈저리게 느꼈다.
그 때, 강시헌의 손짓에 따라 윤지수는 작은 창문이 있는 방으로 몰래 들어갔다. 방 안은 비교적 고요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정원은 달빛에 휩싸여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창문 틈새로 보이는 모습은 마치 누군가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듯했다.
“우린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
강시헌의 말투에는 단호함과 동시에 슬픔이 섞여 있었다.
“이 게임은 단순히 도망치는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진정한 전투야. 사냥감으로 선택된 자라도, 사냥감으로 지목된 인물을 타인으로 몰아서 살아남는 선택을 할 수도 있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윤지수에게 희미한 희망의 불씨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이들이 예측 불가능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상기시켰다.
윤지수는 눈을 감고 자신의 결심을 다졌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혹은 자신을 이용해 이 게임의 규칙을 뒤집기 위해, 그녀는 반드시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제 두려움보다 강한 결심과, 이 암울한 밤을 끝내겠다는 불타는 의지가 자리 잡았다.
방 안의 정적을 깨고, 다시 들려오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강시헌은 빠르게 창문 뒤에 숨으며 윤지수에게 속삭였다.
“서둘러야 해. 놈들이 눈치채기 시작했어”
두 사람은 조심스레 방을 빠져나와 비밀 통로를 통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도에서는 이미 사냥꾼들이 치밀하게 수색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까스로 윤지수를 노리고 있는 듯했다.
강시헌의 지휘 아래, 그들은 서로 눈빛만으로 의사를 전달하며, 한 치의 소리도 내지 않고 이동했다. 한쪽 복도 끝,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희미한 빛이 보였다.
“저게 우리 탈출구다.”
윤지수는 그 말에 힘입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서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수야! 어디가?”
차가운 목소리가 복도를 가르며 들려왔다. 광기에 어린 목소리는 유나의 것이었다. 지수는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끼며, 공포감에 걸음을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순간, 강시헌이 유나를 붙잡으며 외쳤다.
“도망쳐!”
그의 절박한 외침에 윤지수는 몸을 일으켜 달리기 시작했다. 사냥꾼들의 발소리와 함성, 그리고 격렬하게 움직이는 그림자들이 뒤따라 오면서 마치 미로 같은 저택을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쏟고 있었다.
복도의 한 모퉁이에서 지수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상황을 살폈다. 지수의 눈동자는 한층 깊어진 두려움과 결심을 담고 있었다.
“강시현은 분명 사냥감을 다른사람으로 유도하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어, 현재로서는 강시현과 유나 말고는 내가 윤지수라는 걸 아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지수는 유나에 대한 배신감과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싸움에 대한 준비를 다짐했다.
저택의 깊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발소리와 숨소리들은, 이 사냥 게임이 단순한 도주극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 전투임을 일깨워 주었다. 윤지수는 앞으로의 선택이 그녀의 생사를 좌우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도망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유나는 다시 한 번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운명은 이제 시작되었고, 앞으로 펼쳐질 선택과 배신, 그리고 의외의 동맹이 이 치명적인 게임의 판도를 바꾸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