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수가 숨어있는 동안, 강시헌은 정유나를 따돌리고 윤지수와 무사히 합류했다. 저택의 미로 같은 복도와 어둠 속에서, 윤지수와 강시헌은 숨죽이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난 밤의 도망 속에서도, 그녀의 머릿속엔 탈출에 대한 한 가닥 희망과 동시에 불안이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치밀한 심리전과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지수야, 여기서 잠깐 멈춰.”
강시헌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내 작은 빈 방으로 두 사람을 이끌었다. 방 안은 창문도 없이 깜깜했고, 단 하나의 희미한 전등 불빛만이 벽을 따라 깔렸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숨을 고르며 서로를 마주보았다.
“내가 말했던 ‘법칙’이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를 이제 알게 될 거야.”
강시헌의 눈빛은 평소보다 한층 날카로워 보였다. 그의 말투에는 단호함과 동시에 묘한 유혹이 섞여 있었다. 윤지수는 어쩔 수 없이 마음 한켠에서 뭔가 느껴지는 이 이질적인 감정에 혼란스러워졌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 탈출구를 향한 희망과 동시에, 강시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의 규칙은 단순히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풀리지 않아. 살아남으려면, 우리 스스로도 이 게임의 일부가 되어야 해.”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윤지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어갔다.
“네가 살아남으려면, 나와 함께 이 게임을 한 번 뒤집어봐야 해. 즉, 너 자신이 사냥꾼이 되는 거야.”
윤지수는 말문이 막혔다. 그 제안은 단순한 탈출이 아니라, 도덕과 인간 본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스며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믿을 수 없다는 경계심이 강하게 밀려왔다.
“내가… 사냥꾼이 된다는 건, 곧 다른 이들의 목숨을 건지는 선택을 한다는 뜻인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혼란, 그리고 어쩐지 묻어나는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맞아. 우리가 서로를 이용하고,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어야만 이 게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어.”
강시헌은 낮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게는 네가 특별하다는 이유가 있어. 다른 이들은 단순히 두려움에 떨겠지만, 너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
그의 말은 마치 독설 같으면서도, 동시에 깊은 유혹과 약속을 담고 있었다. 윤지수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눈빛에 끌리면서도, 경계심을 떨칠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사냥꾼들의 발소리와 혼란의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지만, 이 순간만큼은 두 사람만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만약 네가 나와 손을 잡는다면…”
강시헌은 잠시 멈춘 후, 속삭이듯 말했다.
“너는 단순한 사냥감이 아니라, 이 게임의 주체가 될 수 있어. 살아남는 것뿐 아니라, 누가 이 게임을 지배하는지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야.”
윤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지금까지 그녀는 두려움에 휩싸여 단순히 도망치기만 했지만, 이 제안은 그녀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의 잔혹한 본성과 그 안에 숨겨진 욕망을 직면하게 만드는 위험한 선택이기도 했다.
“제가… 선택을 한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강시헌은 눈빛을 낮추며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대가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어. 물론, 이 길은 평탄치 않을 거야. 배신과 위험, 그리고 예상치 못한 함정들이 널 기다릴 거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 함께 이 게임의 규칙을 다시 쓸 수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과 냉혹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그 순간, 방 밖에서 다시 한 번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발소리가 두 사람의 결정을 재촉하는 듯했다. 지수는 한참을 눈을 감았다가, 다시 강시헌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알겠어요, 당신을 믿을게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결연함과 동시에, 미묘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강시헌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부터 너는 단순한 희생자가 아니라, 이 게임의 한 축을 담당할 사람이야. 준비되었지?”
두 사람은 서로의 결심을 확인하며, 어둠 속으로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그 순간, 윤지수의 내면에서는 두려움과 결의, 그리고 미묘한 기대감이 뒤섞인 감정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 선택이 과연 그녀를 구원으로 이끌 것인지, 아니면 더욱 깊은 함정으로 빠뜨릴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