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의 어둠이 깊어질수록 윤지수의 머릿속에도 불안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지난 밤 강시헌과 함께 내린 결정 이후,
그녀는 자신이 단순한 희생자에서 벗어나 한 편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선택의 대가가 무엇일지 알 수 없었다.
복도 끝, 낡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던 두 사람은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살폈다.
강시헌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우리 앞에는 또 다른 선택의 기로가 있다. 오늘 밤, 클럽의 다음 단계가 진행되는데,
그 선택에 따라 우리 운명이 달라질 거야.”
윤지수는 눈을 부릅뜨며 그를 바라보았다.
지난 제안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보다 더 위험한 선택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좁은 비밀 통로를 지나면서, 주변의 정적과 어둠 속에 숨은 카메라,
그리고 간간히 들려오는 발소리에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강시헌은 벽에 걸린 오래된 지도와 메모들을 살펴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저택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심리와 선택을 시험하기 위해 설계된 일종의 무대야. 여기서 누가 사냥꾼이 되고, 누가 희생자가 될지는 오로지 너의 선택에 달려 있어.”
윤지수는 자신의 불안한 가슴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지난밤의 결정이 단순한 생존 전략이었는지,
아니면 클럽의 숨겨진 의도를 밝혀내기 위한 덫이었는지.
“내가 과연 이 게임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잠시 후, 두 사람은 좁은 비밀 방에 도착했다.
그곳은 외부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고요한 공간이었다.
강시헌은 작은 테이블 위에 여러 장의 문서와 사진, 그리고 복잡한 도면이 담긴 한 권의
두꺼운 노트를 펼쳤다.
“이 노트는 클럽이 운영되는 진짜 방식을 보여줘. 여기엔 지금까지 벌어진 사건들, 각 단계마다 참가자들이 겪은 선택의 결과가 기록되어 있어.”
그의 목소리에는 냉철한 계산과 동시에 무언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윤지수는 손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끼며 문서를 훑어보았다. 그 안에는 상류층 인사들의 이름과, 그들이 감추려 했던 음모의 단서들이 담겨 있었다.
“내가 제안하는 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야. 첫 번째는 지금처럼 은밀하게 도망치는 길. 이 곳에서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고, 하루를 버틴다면 출입문이 열리고 넌 탈출 할 수 있어”
강시헌은 잠시 멈칫하다가, 눈빛을 윤지수에게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선택은, 네가 직접 ‘사냥꾼’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거야. 즉, 네가 다른 참가자에게 ‘사냥감’의 역할을 부여하여 클럽의 전반적인 판도를 바꾸는 거지. “
강시헌은 비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는 게 쉽진 않겠지. 하지만 자신을 사냥감으로 만든 친구녀석의 얼굴을 보느니 차라리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때 처단하는 게 좋지 않을까?”
윤지수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 선택 모두 매력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유를 찾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본연의 잔혹함과 배신, 그리고 도덕적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무게가 그녀를 짓눌렀다.
“강시헌 씨… 제가 이 길을 선택하면, 확실히 정유나에게 복수할 수 있는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강시헌은 미소를 띄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타인을 짓 밟은 댓가는 죽음으로써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윤지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 펼쳐진 두 갈래의 길. 한쪽은 계속해서 피해 도망치는 길, 다른 한쪽은 어둠 속에서 직접 상대를 제압하는 길. 그녀의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결의가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마침내, 윤지수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결정을 내렸다.
“저… 저는 두 번째 선택을 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동시에 단호했다. 강시헌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좋아, 그럼 네가 바로 이 게임의 새로운 주역이 될 거야. 이제부터 네가 가진 힘과 지혜로 이 잔혹한 질서를 무너뜨리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앞으로 펼쳐질 치열한 전투와 배신, 그리고 상류층의 어두운 비밀에 맞설 준비를 다짐했다.
이 선택이 결국 그들에게 자유와 구원을 가져다줄지, 아니면 더 깊은 절망으로 빠뜨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는 이제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새로운 사냥꾼이 되기로 한 것이다.
저택의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려왔고, 두 사람의 마음 한켠에는 이제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우리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어.”
강시헌의 말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며, 윤지수는 앞으로의 길을 향한 결연한 눈빛으로 어둠을 뚫고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