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의뢰가 끝난 후,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빠졌다. 첫사랑의 저주라는 것이 단순한 감정적인 미련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의 인생을 흔들리게 만든다는 걸 도훈을 통해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정말 끝난 걸까?”
그녀는 여전히 도훈이 완전히 미련을 떨쳐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현우는 그제야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다음 의뢰인을 만나러 가야겠네요.”
서윤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벌써요? 잠깐만요, 도훈 씨 일도 아직 마무리된 게 확실한지 모르겠는데….”
“이미 결정했어요.” 현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첫사랑의 저주는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닙니다. 선택과 행동이 중요하죠. 김도훈 씨는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서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여전히 이 마법이 사람들의 감정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다음 의뢰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잊혀진 사랑의 그림자
다음 의뢰인은 서른셋의 여성, 최하연이었다. 그녀는 한 달 전 오래된 연인을 잃었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상대방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건 조금 이상하네요.” 서윤은 서류를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헤어진 게 아니라, 갑자기 연락이 끊기고 실종이라니….”
현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사랑의 저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니까요.”
“그럼 하연 씨의 첫사랑이 갑자기 사라진 게 저주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우는 유리병을 꺼내 보였다. 병 속의 물은 처음부터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 정도로 강한 흔적이 남아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서윤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도훈과 달리, 이번 의뢰인은 더 깊은 감정 속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녀가 아직도 상대방을 잊지 못한 건 물론이고, 아예 그 실종이 그녀의 삶을 붙잡고 있는 듯했다.
“우선 하연 씨를 직접 만나 봐야겠어요.”
최하연과의 만남
그들은 최하연을 한적한 카페에서 만났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커피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의 눈 밑에는 깊은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현우라고 합니다.”
현우가 먼저 말을 건넸지만, 하연은 서윤을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저는 서윤 씨가 궁금했어요. 제 사연을 들어주신다고 해서요.”
서윤은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연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연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제 첫사랑은 강민혁이라는 사람이었어요. 7년 동안 함께했죠. 그런데 한 달 전, 갑자기 그가 사라졌어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흔적조차 없이요.”
“경찰에는 신고하셨나요?”
“했어요.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그의 가족조차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고요.”
서윤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한 사람을 이렇게 완벽히 지워버리는 건, 단순한 현실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우가 조용히 물었다. “그분과 마지막으로 연락하셨을 때, 어떤 일이 있었나요?”
하연은 한참 동안 망설였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린… 그날 싸웠어요.”
그녀는 흐려진 눈으로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아주 사소한 문제였는데, 그날따라 감정이 격해졌어요. 나는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는 아무 대답 없이 나갔어요.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서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순간, 현우는 유리병을 그녀 앞에 놓았다.
“이 물을 만져보세요. 그리고 당신이 느낀 감정을 떠올려보세요.”
하연은 조심스럽게 병을 쥐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검붉은 물이 거센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일렁였다.
현우가 저주가 강하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건 단순한 이별이 아니었다. 뭔가 더 깊고 어두운 감정이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서윤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이번 의뢰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