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하는 현우와의 갈등을 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자신이 살아온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철저히 통제해왔지만, 현우와 함께하면서 느낀 감정은 그 모든 것보다 강렬했고 진실했다.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두 사람에게 여전히 쉽지 않은 도전 과제를 남겨두고 있었다.
재하의 회사는 여전히 홍대 커뮤니티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강행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재하는 그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이었다. 반면, 현우는 커뮤니티와 예술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고, 그의 예술가 친구들 또한 그의 곁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압박]
며칠 후, 재하는 프로젝트와 관련된 중요한 임원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임원들은 홍대 일대를 상업적으로 개편해 새로운 소비층을 유치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다. 재하는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띄운 자료를 보며 수익성을 차분히 보고했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예전 같았으면 회사의 목표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그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기가 어려웠다.
회의가 끝나고, 재하의 상사인 박 팀장이 그를 따로 불렀다. 박 팀장은 재하를 응시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박 팀장: “요즘 자네, 조금 달라진 것 같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재하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재하: “아닙니다. 프로젝트와 관련해 고민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박 팀장은 미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 팀장: “재하 씨, 내가 자네한테 이 프로젝트를 맡긴 이유를 알고 있겠지? 이 프로젝트는 회사의 ‘미래’를 걸고 있는 사업이야. 자네가 그만큼 책임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재하: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프로젝트가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박 팀장은 재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박 팀장: “좋아, 그럼 자네도 알겠지만, 이 프로젝트는 감정이 아니라 이익이 우선이야. 현지의 반발? 시간이 지나면 다 잠잠해져. 돈이 들어가면 사람들은 결국 따라오게 돼 있어.”
(재하는 박 팀장의 말에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회사의 목표는 언제나 효율성과 이익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마음이 그것만을 따르지 못했다.)
재하: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커뮤니티와 상생하는 방향이 장기적으로도 회사에 더 긍정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박 팀장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의 말을 끊었다.)
박 팀장: “그게 자네가 할 소린가? 이 회사가 지금까지 자네를 어떻게 키워줬는데, 여기서 그렇게 나오면 곤란하지 않나?”
(재하는 잠시 침묵했지만, 고개를 숙일 수만은 없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재하: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홍대가 지닌 문화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예술가들과 협력하면서도 회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박 팀장은 한동안 침묵하며 재하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박 팀장: “좋아. 자네가 그렇게 확신한다면, 일주일 줄 테니 ‘상생 방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오게. 회사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네도 알다시피 난 냉정하게 판단할 거야.”
(재하는 고개를 숙이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회사와 커뮤니티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결심했다.)
[현우와 친구들의 항의 집회]
그날 저녁, 재하는 홍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현우와 그의 예술가 친구들이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 작은 항의 집회를 여는 광경을 목격했다. 현우와 함께 활동하는 친구들, 지우와 민석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들은 현우와 함께 플래카드를 들고 “예술가의 공간을 지켜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현우는 작은 연단에 올라가 사람들 앞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커뮤니티를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현우: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닙니다. 이곳은 예술가들이 모여 꿈을 나누고,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공간입니다. 만약 이곳이 상업 지구로 변한다면, 홍대는 그저 또 하나의 쇼핑 거리로 전락하고 말 겁니다. 그건 우리 모두에게 큰 손실입니다.”
(재하는 사람들 틈에 숨어서 현우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현우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는 그를 흔들었고,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깨달아 가고 있었다.)
재하: (속으로) ‘현우에게 이 공간이 이렇게 소중한데… 내가 하는 일이 그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구나.’
[재하의 결심]
며칠 후, 재하는 고민 끝에 큰 결심을 하고 박 팀장을 다시 찾아갔다. 그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곧장 박 팀장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재하: “팀장님, 이 프로젝트의 방향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커뮤니티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박 팀장은 재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날카롭게 물었다.)
박 팀장: “지금… 뭐라고 했나?”
재하: (굳은 결심으로) “홍대 커뮤니티의 가치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건 장기적으로 회사에도 좋지 않습니다. 커뮤니티와 예술 공간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박 팀장: “그게 자네가 할 소리인가? 이 회사가 지금까지 자네를 어디까지 키워줬는데, 자네가 지금 와서 발목을 잡는 건가?”
(재하는 그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이내 자신의 생각을 단호히 전했다.)
재하: “저는 홍대가 가진 문화적 가치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홍대를 지키고자 하는 예술가들과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지키고 싶어 하는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박 팀장은 한동안 노려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 팀장: “좋아.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 자네가 말하는 그 ‘상생 방안’을 구체적으로 가져와 보게. 다만 그 안에 회사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으면, 자네도 잘 알겠지?”
재하: “네. 꼭 설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현우와의 재회]
현우는 한동안 재하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동안 재하와 대립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재하가 이렇게 찾아와 자신에게 손을 내밀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다 이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현우: “솔직히… 네가 이렇게 말해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사실 너한테 많이 실망했었거든.”
(재하는 그 말에 순간 얼굴이 굳었지만, 겸허히 받아들였다.)
재하: “알아. 나도 알아. 너한테 상처 줬다는 거… 모른 척하고 회사 입장만 내세운 게, 얼마나 비겁했는지도.”
(현우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곧 다시 재하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현우: “그래도… 지금 네가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진심으로. 난 네가 끝까지 회사 쪽에만 설 줄 알았어. 네가 그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줄 알았다고.”
(재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답했다.)
재하: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솔직히… 회사가 전부인 줄 알았어. 그게 내 길이라고 확신하면서 너를 외면했던 것도 맞고. 근데… 현우, 네가 집회에서 연단에 서서 말할 때, 그걸 보고 깨달았어. 그 공간이 너한테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는지.”
(현우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 속에는 여전히 약간의 불안이 섞여 있었다.)
현우: “재하 씨, 네가 진짜로 이 커뮤니티와 함께할 수 있을까? 네가 그 회사에서 쌓아온 모든 걸 포기하면서까지… 그게 가능할까?”
(재하는 깊은 숨을 내쉬며 현우의 손을 잡았다.)
재하: “가능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이제 결심했어. 너와 이 커뮤니티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할 거야. 회사와 커뮤니티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설득해볼 거야. 그게 내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현우는 재하의 단호한 눈빛을 보며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뒤로는 미소가 차츰 그의 얼굴을 밝히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의 손을 더 꽉 쥐었다.)
현우: “정말 고마워, 재하 씨. 내가 널 얼마나 오해했는지 이제 알겠어. 그리고 이제는… 우리 정말로 같은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아.”
(재하는 현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 이상 감정을 억누르지 않았다.)
재하: “현우,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네 옆에 있을게. 그리고 네가 지키고자 하는 이 공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거야.”
(현우는 잠시 멍하니 재하를 바라보다가, 갑작스레 그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상처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현우: (조용히 속삭이며) “나도 이제 너한테 기대어도 되겠지? 너와 함께라면… 나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재하: “그래. 우리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자. 이제 더 이상 혼자 견디지 않아도 돼.”
(두 사람은 오래도록 포옹한 채 서 있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지만, 이제는 함께 그 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재하는 더 이상 회사와 현우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분명했고, 이제는 현우와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