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의 봄은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듯 모든 것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갓 피어난 벚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은,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그 꿈의 중심에는 언제나 태준 선배가 있었다.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다정함까지.
그는 모든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그 선망의 대상이 내게 고백해 왔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나는 벤치에 앉아 전공 서적을 읽고 있었다.
집중하려 애썼지만, 흩날리는 벚꽃잎과 따스한 봄바람에 마음은 자꾸만 붕 떠 있었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채윤아.”
고개를 들자, 태준 선배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그의 모습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저… 잠시 시간 괜찮을까?”
평소와는 조금 다른, 어딘가 조심스러운 그의 모습에 나는 더욱 두근거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설마… 하는 작은 기대감이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네, 괜찮아요. 무슨 일이세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채윤아, 나는… 네가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너를… 좋아했어.”
그의 고백은 마치 꿈만 같았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다.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선배를… 좋아했어요.”
우리의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준 선배는 상상 이상으로 다정하고 로맨틱했다.
그는 매일 아침 학교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고, 수업이 끝나면 함께 점심을 먹었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는 옆자리에 앉아 조용히 나를 응원해 주었고,
늦은 밤에는 집 앞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그는 마치 영화 속 남자 주인공처럼 완벽했다.
“채윤아, 오늘 수업은 어땠어?”
“오늘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가 좀 어려웠어요.”
“어떤 부분? 내가 도와줄까? 전에 그 교수님 수업 들었었는데, 아마 도움이 될 거야.”
그는 항상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고,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의 세심한 배려에 나는 매일매일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채윤아, 주말에는 뭐 할 거야?”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는데요.”
“그럼 나랑 영화 보러 갈까? 네가 보고 싶어 했던 로맨스 영화가 개봉했더라.
아니면… 드라이브라도 갈까? 네가 좋아하는 바닷가로.”
그는 항상 내 취향을 기억하고, 나를 위한 데이트를 준비했다.
그의 제안은 언제나 설레었고, 나는 매번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다정함은 아주 미묘하게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부분이었지만, 나는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따뜻한 햇살 아래 숨겨진 차가운 그림자처럼,
그의 다정함 뒤에 무언가 다른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그는 내 친구들과의 약속에 대해 지나치게 궁금해했다.
“채윤아, 오늘 저녁에는 친구들이랑 약속 있다고 했었지?”
“네, 서현이랑 같이 저녁 먹기로 했어요.”
“서현이… 그 친구 말이지? 음… 둘이서만 가는 거야? 다른 친구들은 안 만나고?”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부드러웠지만, 나는 어딘가 모르게 쎄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나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 모든 행동을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둘이서만요. 왜 그러세요?”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려 애썼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불안감이 자리 잡았다.
“아니, 그냥…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해서.
물론 친구들과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이니까.”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미묘한 압박감을 느꼈다.
마치 부드러운 솜사탕 속에 숨겨진 작은 돌멩이처럼,
그의 다정함 속에 숨겨진 무언가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달콤한 속삭임 뒤에는…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언가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