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준 선배의 다정함은 여전히 변함없었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압박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마치 얇은 유리 막이 겹겹이 쳐진 것처럼, 그의 진심을 가늠하기 어려웠고,
나는 점점 더 불안해져 갔다.
어느 날, 학교 앞 카페에서 서현이와 함께 과제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같은 과 동기인 지훈이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채윤아, 서현아, 여기서 뭐 해?”
지훈이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붙임성 좋고 유쾌한 성격으로, 과에서 인기가 많은 친구였다.
특히, 그는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몇 번이나 함께 밥을 먹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태준 선배 때문에 매번 거절해 왔었다.
“과제 하고 있었어. 너는 무슨 일이야?”
서현이가 대신 대답했다. 지훈이는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채윤아, 혹시… 시간 괜찮으면 나중에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전에 이야기했던 거… 아직도 유효한데.”
나는 순간 당황했다. 태준 선배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지훈이가 왜 지금 이런 제안을 하는 걸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려 했다.
“아… 그게…”
그때,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윤아! 여기서 뭐 하고 있어?”
태준 선배였다. 그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어딘가 차갑고 날카로웠다.
특히 지훈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마치 날 선 칼날처럼 매서웠다.
“어, 선배. 우연히 여기서 만났어요.”
나는 어색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태준 선배는 내 옆에 앉으며 지훈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채윤이 남자친구, 태준입니다.”
그는 지훈이에게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경고하는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마치 ‘내 여자에게서 떨어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훈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태준 선배와 악수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같은 과 동기 지훈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마치 두 마리 맹수가 서로를 견제하는 듯한, 그런 팽팽한 긴장감이었다.
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지훈 씨는 채윤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태준 선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감시하려는 것처럼.
“아… 그냥… 전에 채윤이에게 밥 한번 같이 먹자고 했었는데, 오늘 다시 한번 물어보려고…”
지훈이는 어색하게 대답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죄인처럼, 두 사람 사이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아, 그랬군요. 하지만… 채윤이는 앞으로 당분간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네요.
그렇지? 채윤아?”
태준 선배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손길은 마치 쇠사슬처럼, 나를 꼼짝 못 하게 묶는 듯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배.”
지훈이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그럼… 다음에 봐요, 채윤아.”
그는 나에게 짧게 인사를 건네고는 서둘러 카페를 나섰다.
그의 뒷모습은 어딘가 안쓰러워 보였다.
지훈이가 떠나자, 태준 선배는 내 어깨에서 팔을 풀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채윤아, 다른 남자랑 너무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 시선을 주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섬뜩한 경고가 숨겨져 있었다.
소름 끼치는 경고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말은 마치 저주처럼, 내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끈에 묶인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그의 사랑은… 점점 더… 숨 막히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점점 더…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