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혁의 마지막 말이 현주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친구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관계로 보고 싶습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현주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저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를 들으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
진혁도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둘 사이에는 오직 가벼운 바람 소리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날 이후, 현주는 이상하게도 진혁을 자꾸만 신경 쓰게 되었다.
아니, 신경 쓰이던 게 아니라,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나 선생님 좋아하는 거잖아?’
치과 치료 때문에 시작된 관계였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그다음엔 그저 익숙해져서,
그리고 이제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기대되기까지 했다.
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괜히 신경이 쓰이고,
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이건 명백히 좋아하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민했다.
진혁도 같은 마음일까?
아니면 그냥 그녀가 혼자 착각하는 걸까?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친구보다는 더 가까운 관계.’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며칠 후, 현주는 진혁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어색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막상 마주하니 그는 여전히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현주는 알았다.
그의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식사를 마친 후, 공원을 걷다가 현주는 드디어 결심을 했다.
“선생님.”
“네.”
“저… 이제 치과랑 완전히 친해졌어요.”
진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정말요?”
“네. 이제 치과는 무섭지 않아요.”
현주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다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치과보다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겼어요.”
진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짧은 침묵 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요.”
그 순간, 현주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네…?”
“저도 김현주 씨랑…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그렇게 솔직한 감정이 오가는 순간이었다.
서툴지만, 솔직한 마음이 닿았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더 이상 애매한 관계가 아니었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가며,
천천히 연인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였다.
진혁은 여전히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가끔씩 따뜻한 배려를 보였다.
현주는 그런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치과 공포증 때문에 시작된 관계가,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
그녀는 피식 웃으며 진혁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아니… 진혁 씨.”
진혁이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요?”
“이제 치과 가는 거, 평생 안 무서울 것 같아요.”
진혁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연인이 된 이후, 두 사람의 일상은 많은 것이 변했다.
이전에는 환자와 의사였지만, 이제는 함께 맛집을 찾아다니고,
주말이면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현주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근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나요?”
진혁은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치과에 들어와서 도망가려던 사람을 잊을 리가 있나요.”
현주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땐 정말 치과가 무서웠어요.”
“지금은요?”
현주는 진혁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안 무서워요. 선생님, 아니, 진혁 씨가 있으니까.”
진혁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현주는 그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다.
이제 치과는 더 이상 무서운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가장 소중한 인연을 만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