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치료 과정은 길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차분하고 정확한 진혁의 손길 덕분에 현주는 점점 그를 신뢰하게 된다.
“생각보다 덜 아픈 것 같은데…?”
그런데 치료가 끝나고 일어서려던 순간, 갑자기 어지럼증이 몰려온다.
진혁이 한 손으로 그녀를 잡으며 단호하게 말한다.
“괜찮아요?”
현주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붉히지만, 진혁은 여전히 무표정하다.
그런데… 마음이 묘하게 흔들린다.
"자, 오늘도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이진혁은 평소처럼 차트를 확인한 뒤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현주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 오늘은 기분이 좀 안 좋은데,
혹시 컨디션 안 좋을 때 치료하면 더 아프거나 그런 거 없죠?"
이진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근데 기분 탓인지 오늘은 더 아플 것 같은 느낌이…"
"기분 탓입니다."
단호했다.
현주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번 치료는 지난번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현주는 입을 벌린 채로 속으로 수백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게 끝나면 뭘 먹어야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까… 국밥? 삼계탕?'
하지만 이진혁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순간, 그녀의 생각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윙—
치과 특유의 기계 소리가 들리는 순간, 현주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김현주 씨, 애들입니까?"
갑자기 날아든 이진혁의 말에 현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마취하고 치료하는데도 이렇게 과한 반응을 보이는 건 보통 유치원생들입니다."
현주는 억울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생님, 저 유치원생 아니거든요?"
"그럼 가만히 계세요. 위험합니다."
역시 단호박이었다.
현주는 속으로 울면서 다시 입을 벌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치료가 마무리되었다.
마취가 덜 풀린 현주는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 순간, 이진혁이 재빠르게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괜찮아요?"
현주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붉혔다.
"아, 네… 괜찮… 아니, 안 괜찮은 것 같기도…"
진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안정적으로 잡아주며 말했다.
"어지러우면 잠깐 앉아 계세요."
그의 손길은 차가웠지만 단단했다. 이상하게도 안정감이 들었다.
현주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 너무 무섭다고만 생각했는데… 믿을 만한 사람인가?'
그 순간, 뭔가 묘하게 흔들리는 감정을 느꼈다.
치료를 마치고 기다리던 윤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야, 너 괜찮아? 얼굴이 창백한데?"
현주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았다.
이진혁이 곁에서 조용히 말했다.
"혈압이 순간적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세요."
윤지는 흥분해서 물었다.
"아니, 선생님! 우리 현주 너무 괴롭히신 거 아니에요?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니냐고요!"
이진혁은 무표정하게 윤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정확한 치료를 했을 뿐입니다."
현주는 한숨을 쉬었다. 윤지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듯했지만,
이진혁은 여전히 단호하기만 했다.
"김현주 씨, 애들처럼 행동하면 안 됩니다."
현주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선생님, 또 애들이라고 하시네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저 어른이에요, 어른!"
이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다음 치료 때는 차분하게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현주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 사람, 딱딱하고 차갑긴 한데…'
현주는 속으로 깊이 생각했다.
이진혁의 태도는 너무나도 냉정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림 없는 신뢰감이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신뢰감이 싹트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신뢰에서
다른 감정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