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는 점점 진혁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사람, 정말 감정이 있는 걸까?
너무 냉철한 태도에 오히려 궁금증이 커진다.
치료를 받던 어느 날, 간호사와 진혁이 대화하는 걸 엿듣게 된다.
“선생님, 왜 그렇게 무표정이세요? 환자분들 무서워하시잖아요.”
“웃는다고 치료가 쉬워지는 것도 아니고.”
현주는 속으로 생각한다.
‘진짜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면 현주는 괜히 신경이 곤두섰다.
평소 같으면 치과에 가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았겠지만,
요즘은 다른 의미로 신경이 쓰였다.
‘이진혁 선생님,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그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마치 두꺼운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무표정한 얼굴, 단호한 목소리, 그리고 칼같이 정확한 손길.
그런데 이상하게도, 치료를 받을 때마다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이게 뭐지? 익숙해진 걸까?’
현주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치료를 받던 어느 날,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현주는
진료실에서 들려오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님, 왜 그렇게 무표정이세요? 환자분들 무서워하시잖아요.”
“웃는다고 치료가 쉬워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말을 듣자마자 현주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구나. 이 사람은 정말 감정이 없는 건가?’
어쩐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단순히 차가운 성격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무덤덤한 태도 속에서 때때로 보이는 사소한 배려들.
손이 떨릴 때 천천히 기다려 주던 것, 아플까 봐 여러 번 확인하던 것.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만 신경 쓰이는 거야?’
현주는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지우려 했다.
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김현주 씨, 집중하세요.”
진혁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아, 네!”
“이럴 때 딴생각하면 위험합니다.”
현주는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딱 걸렸다.
‘아니, 내가 딴생각한 게 왜 이렇게 창피한 거야?’
“자, 마취합니다. 움직이지 마세요.”
진혁은 변함없이 단호한 태도로 치료를 진행했다.
하지만 현주는 그 단호함 속에서 뭔가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치료가 끝난 후, 현주는 무거운 마음으로 진료실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진혁이 입을 열었다.
“마취가 아직 덜 풀렸을 거예요. 그러니까 뜨거운 음식은 피해 주세요.”
“네? 아, 네…”
“그리고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제가 잡아먹습니까.”
현주는 멍해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 지금 나 걱정해 준 건가…?’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유도 없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야, 이 반응은?’
하지만 진혁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차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는데, 현주는 이상하게도 더 혼란스러웠다.
그날 밤, 현주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윤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윤지야, 혹시 무뚝뚝한 사람이 갑자기 사소한 걱정을 하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거 정상임?]
윤지의 답장은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어? 혹시 너 설마?]
[설마 뭐?]
[너 그 선생님 좋아하는 거 아냐?]
현주는 그대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좋아한다고?’
그건 생각도 못 해 본 방향이었다.
하지만 윤지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설마, 정말 그런 건가…?’
다음날도 역시 치료를 받으러 갔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도 진혁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심장이 빨리 뛰었다.
“김현주 씨, 오늘도 긴장했습니까?”
“네? 아, 아니요! 전혀요!”
하지만 너무 빠른 대답이었는지, 진혁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런데 왜 얼굴이 빨개졌죠?”
현주는 당황해서 손으로 볼을 가렸다.
“그, 그게요! 갑자기 더워서요! 요즘 날씨가 좀… 덥잖아요?”
진혁은 시계를 한 번 보더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기온 10도입니다.”
“….아..네…참 친절하시네요”
현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이 사람 너무 현실적이야!’
그녀는 괜히 침착한 척하며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혁과 가까워지는 이 시간이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