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받은 후, 현주는 한참 동안 멍한 상태였다.
“네, 선생님?”
“시간 괜찮으시면 저녁 같이 드실래요?”
“네??”
현주는 너무 놀라서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갑자기요?”
“충치 치료 끝났으니까, 이제 식사도 자유롭게 하셔도 되고.”
“…그런 이유로요?”
“네.”
진혁은 너무나 담담한 목소리였다.
정말 별 의미 없이 하는 말처럼 들렸지만, 현주는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이거… 혹시 데이트 신청인가? 아니지, 그냥 밥 먹자는 거잖아.’
그러나 그녀의 심장은 이미 두근거리고 있었다.
“어디서 만날까요?”
“병원 근처에서 봐요.”
현주는 약속 장소로 나가면서 괜히 거울을 몇 번이나 들여다봤다.
“이거 너무 꾸몄나…? 아니, 그냥 평범하게 입은 건데?”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평소보다 확실히 더 신경 쓴 티가 났다.
머리도 차분하게 정리했고, 립스틱도 살짝 발랐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에서 진혁을 마주했을 때, 그녀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도 평소와 달리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가운을 벗은 그는 단정한 셔츠에 슬랙스를 입고 있었고,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가 덜했다.
‘이진혁 선생님이랑 밖에서 마주친다는 게 아직도 어색하네….’
그러나 더 놀라운 건 진혁도 어색해하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는 괜히 손목시계를 한 번 확인하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드시고 싶으세요?”
“선생님은요?”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더 어렵잖아요!”
그녀가 볼멘소리하자, 진혁은 아주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김현주 씨가 먹고 싶은 걸로 하죠.”
그 작은 미소 하나에 현주는 심장이 또 요동쳤다.
‘이거 그냥 밥 먹는 건데, 나 왜 이래….’
식사를 하면서도 두 사람은 어색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처음에는 치료 이야기가 나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쉬는 날엔 뭐 하세요?”
“운동하거나 책 읽습니다.”
“진짜 예상 그대로네요. 완전 모범적인 생활.”
“김현주 씨는요?”
“저요? 전 그냥 영화 보고, 친구 만나고, 그러다가 시간 가는 스타일이죠.”
진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요.”
“뭐가요?”
“그렇게 여유롭게 사는 거.”
“선생님도 그렇게 살면 되잖아요.”
그러나 진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의 웃음이 묘하게 쓸쓸해 보였다.
현주는 순간 그의 표정을 보며 가슴이 저릿했다.
‘이 사람… 나보다 훨씬 외로운 사람이구나.’
그렇게 두 사람의 어색한 첫 데이트는 점점 더 가까운 분위기로 변해갔다.
식사가 끝나고 난 후, 둘은 자연스럽게 근처 공원을 걸었다.
“밥도 다 먹었는데, 이제 뭐 할까요?”
“그냥 좀 걸을까요.”
진혁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옅게 숨을 내쉬었다.
평소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이었다.
현주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원래 이렇게 친절하셨나요?”
“아닙니다.”
“그럼 오늘만 특별히 친절한 거예요?”
진혁은 짧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죠.”
그의 대답이 예상 밖이라 현주는 순간 말을 잃었다.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잠시 조용히 앉아 있던 두 사람. 현주는 일부러 가볍게 농담을 던졌다.
“이제 선생님이랑 치과 말고 다른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거죠?”
진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렇죠. 이제 환자가 아니니까.”
“그럼… 친구?”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친구보다는… 조금 더 가까운 관계로 보고 싶습니다.”
그 순간, 현주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진혁은 더 이상 그녀의 담당 의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