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딩코믹스 사무실.
마감이 임박하면서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서진은 마지막 컷을 그리고 있었다.
"흠... 아직 부족해. 감정선이 더 살아야 해."
도윤은 그녀의 작업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정말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더 수정해야 하나요...?"
"네. 하지만 큰 변화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순간, 문이 열리며 하린이 들어왔다.
"다들 여기 있었네요! 언니, 저녁이라도 먹어야죠!"
하린이 테이블 위에 도시락을 올려놓았다. 서진은 고마운 마음으로 하린을 바라보았다.
"고마워, 하린아.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한라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고프면 집중도 안 되잖아요!"
“금강산 아니고?”
긴장됐던 분위기에서 모두들 큰 소리로 웃는다.
그런데 분위기 깨는 박사도 아니고, 도윤은 시계를 보더니 세상이 꺼져라 한숨을 길게 내쉰다.
"시간은 없지만, 그 말도 맞긴 하네요. 10분만 쉬도록 하죠."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모두가 짧은 휴식을 취했다.
민석도 슬쩍 합류하며 분위기를 풀었다.
"근데 말야, 요즘 서진이 꽤 성장한 것 같아. 인정하시죠?"
도윤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작업 속도도 늘었고, 감정 표현도 확실히 나아졌습니다."
서진은 깜짝 놀라며 도윤을 바라보았다.
"정말요...? 처음 칭찬받는 거 같은데요."
"칭찬을 쉽게 하면 성장이 멈출 수도 있어서요."
그 말에 민석과 하린이 동시에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래도 너무 냉정한 거 아님?"
"그러게요! 서진 언니 힘들었을 텐데요!"
서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오히려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거면 정말 많이 성장한 거겠지.’
도윤은 아무 말 없이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휴식이 끝난 후, 다시 작업을 시작하려던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다시 열렸다. 송다연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윤서진 씨,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사무실 안의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서진은 당황했지만,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다연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서진을 문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앞으로 대표님 앞에서 꼬리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서진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했다.
"네...?"
"푸딩코믹스에서 신인 작가로 주목받는 사람이 많지 않아.
그런데 네가 도윤 대표님의 직접 멘토링을 받으면서 얘기가 많아.
이 업계에서,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지."
서진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차분하게 대답했다.
"전 꼬리 친 적 없어요.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에요."
"네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다르게 볼 거야."
다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곧 회사 내에서 차기 메인 연재 작가를 선정할 거야.
네 작품이 올라갈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더라. 하지만 이건 단순한 실력 문제가 아니야."
서진은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대화를 마친 후, 사무실로 돌아온 서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하린과 민석이 걱정스럽게 다가왔다.
"언니, 괜찮아요? 얼굴이 안 좋아 보여요."
"무슨 일 있었어?"
서진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좀 생각할 게 생겨서."
그러나 도윤은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눈치를 챘다.
"송다연 씨와 무슨 얘기를 나눴나요?"
서진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도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런 말을 했다고요...?"
"네. 하지만 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그냥 제 작품을 더 잘 만들면 되는 거겠죠."
도윤은 한동안 서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서진 씨, 때로는 실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가능성을 믿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그대로 나아가세요."
서진은 그의 진심 어린 말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네. 저, 끝까지 해볼게요."
다음 날, 서진은 더욱 열정적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녀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사무실의 분위기는 다시 활기를 띄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앞으로 더 큰 갈등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