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창고 안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창밖에서는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소리와 가끔씩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현대의 거리를 실감나게 만들고 있었다.
강연우는 일찍 일어나 검을 들고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려했다. 서지윤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검을 다루시는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강연우는 검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낭자의 말을 듣자니, 내 좀 부끄럽소.”
서지윤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면 예술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총을 꺼내 들며 말했다.
“무사님께서는 검을 다루시지만, 저는 총을 다룹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시대에서도 검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연우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여인도 마음이 바뀌었소? 진지하게 검을 배워보겠소?”
서지윤은 그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검을 진지하게 배우면 제가 더 강해질 수 있습니까?”
업계에서 유명한 살인청부업자 지윤은 순간 진짜 조선시대 참한 낭자가 된 기분이다.
“물론이오.”
그녀는 총을 내려놓으며 그의 앞에 섰다. “좋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강연우는 미소를 지으며 검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지윤이 검을 잡으며, 허공에 검을 휘둘러 보인다.
“허허, 어디서 사짜한테 배운건지, 형편 없소이다. 우선, 검을 제대로 잡는 법부터 배우시오. ”
그의 손이 그녀의 손 위에 살짝 닿았다. 그 순간, 서지윤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단순한 지도였지만, 그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묘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강연우 또한 짧은 순간 멈칫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손의 힘을 너무 빼면 안 되고, 너무 강하게 잡아도 안 되오. 흐름을 느껴야 하오.”
서지윤은 그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검을 들어 보았다. 하지만 이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강연우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잡으며 균형을 잡아 주었다.
“천천히, 힘을 빼고.”
그녀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거리가 가까웠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깊은 연못처럼 깊고 차분했다. 둘 사이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달라졌다.
서지윤은 서둘러 시선을 돌리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강연우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좋소. 반복하면 곧 익숙해질 것이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해가 머리 위로 떠올랐다. 서지윤은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며 말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군요.”
“무엇이든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오.”
서지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무사님.”
“말해 보시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선에서의 삶이 그립지는 않으십니까?”
강연우는 짧은 침묵 끝에 대답했다. “그립소. 하지만 돌아갈 방법을 모른다면, 이곳에서 살아남는 수밖에 없소.”
서지윤은 그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시대에서 살아남는 법을요...”
강연우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낭자.”
그 순간,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 어느새 당연해지고 있었다.
조용한 창고 안에서 둘은 잠시 쉬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감은 사라졌고, 서지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상한 불안감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도망쳐야만 하오?” 강연우는 검을 조용히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싸우고 싶으세요?”
강연우는 잠시 생각하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세상 어디에도 싸우고 싶은 사람은 없소. 나아가는 것 일뿐.
우리는 그들과 마주해야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럽시다! 가봅시다! 무사님!”
지윤은 노을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결의를 다진다.
‘그래, 내가 누구야? 에이스 살인청부업자 서지윤님이 아니던가!’
보았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는 점점 이 시대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점점 그와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