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하린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어젯밤 공원에서의 사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태우의 장난스러운 미소와 당황스러운 상황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아, 내가 도대체 왜 그랬지..."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하린은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어쨌든 회사에 가야 했다. 그런데 회사에 가면 강태우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았다.
그 생각에 하린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회사에 도착한 하린은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열었다. 다행히도 강태우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하린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하린의 컴퓨터 화면에 메시지 알림이 떴다.
[강태우: 어제 고백, 진심이었어요?]
하린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굳어버렸다.
'뭐야, 이 사람! 왜 이런 걸 물어보는 거야?'
하린은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멈췄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박하린: 어제는... 착각이었어요. 그냥 잊어주세요.]
하린은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알림이 떴다.
강태우: 착각? 그럼 진짜로 고백하려던 사람은 누구였는데요?]
하린은 당황스러워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자, 하린은 일부러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던 도중, 강태우가 나타났다.
그는 쟁반을 들고 하린의 옆자리로 자연스럽게 앉았다.
"하린 씨, 혼자 먹고 있길래 같이 먹으려고요."
하린은 깜짝 놀라며 태우를 쳐다봤다.
"저, 혼자 있는 게 좋아서요."
태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어제 고백했던 사람한테는 이 정도 예의는 베풀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린은 수저를 떨어뜨릴 뻔하며 말했다.
"제발 그 얘기 그만 좀 해요!"
"왜요? 부끄러워요?"
태우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하린은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어요, 알겠어. 그만 놀릴게요.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원래 고백하려던 사람이 누구였어요?"
하린은 침묵을 지켰다. 그 순간 윤재 선배가 구내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태우는 하린의 시선을 따라가더니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혹시 윤재 선배요?"
하린은 깜짝 놀라 태우를 쳐다봤다.
"어떻게..."
"아니, 하린 씨가 윤재 선배 보는 눈빛이 딱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하린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존경하는 선배일 뿐이에요."
"그럼 나한테 고백한 건 진짜였네요?"
태우는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린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강태우 씨! 그만 좀 하세요!"
태우는 손을 들며 말했다.
"알았어요, 미안해요. 근데 하린 씨,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말해주면 안 돼요?"
하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요. 원래 고백하려던 사람은 윤재 선배였어요.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착각해서..."
"그래요? 그럼 이제부터는 제가 더 헷갈리게 해드릴게요."
하린은 태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쳐다봤다. 태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퇴근 시간이 되자, 하린은 조심스럽게 사무실을 나섰다.
그런데 건물 밖에서 강태우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하린을 보자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늘도 집에 혼자 가는 거예요?"
"그럼 누구랑 가겠어요?"
"그럼 제가 데려다줄게요."
하린은 그가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태우의 눈빛이 뜻밖에 진지하게 느껴졌다.
하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로 장난은 그만하세요."
태우는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오늘은 신사답게 굴게요."
두 사람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나란히 걸었다.
하린은 문득 태우의 옆모습을 힐끗 보았다.
생각보다 듬직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아니야, 지금은 윤재 선배가 우선이야.'
하린은 마음을 다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태우의 장난기 어린 미소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