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하린은 바쁜 업무 속에서 태우와의 어색한 기억을 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잊으려 할수록 태우와의 대화가 자꾸만 떠올랐다.
더구나 태우는 언제부터인지 사무실에서 그녀와 자주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태우의 장난스러운 미소가 눈에 밟혔다.
점심시간이 되자 하린은 일부러 조용한 구석에 앉았다.
동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지만, 하린은 혼자만의 시간을 원했다.
"여기 혼자 앉아 있으면 뭐해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하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역시나 태우였다. 그는 트레이를 들고 그녀 앞에 앉았다. 하린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왜 자꾸 저한테 그러세요?"
태우는 웃으며 수저를 집어 들었다.
"뭐가요?"
"굳이 저랑 밥을 같이 먹으려고 하고, 자꾸 신경 쓰게 만들잖아요."
"그거야... 하린 씨가 재밌으니까요."
태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하린은 입을 다물고 싶었지만, 화가 난 듯 말했다.
"그런 이유로 장난치는 거면 이제 그만해 주세요."
태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알겠어요. 근데, 하린 씨. 제가 장난만 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나름대로 진심으로 다가가고 있는 거예요."
그의 뜻밖의 말에 하린은 말을 잃었다.
태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식사를 이어갔다.
하린은 그의 옆모습을 힐끗 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이 사람한테 휘둘리면 안 돼. 윤재 선배가 우선이야.'
오후 업무가 끝나고, 하린은 동료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우가 다가와 말했다.
"하린 씨, 잠깐 얘기 좀 해요."
주변의 동료들은 흥미로운 눈길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하린은 당황스러웠지만, 결국 태우를 따라 나갔다.
그들은 사무실 복도 끝에 있는 작은 회의실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까지 불러내고."
태우는 문을 닫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묻고 싶어서요. 윤재 선배 좋아하는 거 맞죠?"
하린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걸 왜 물어요?"
"그냥, 하린 씨가 선배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뚜렷해서요."
태우는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정말 그 사람한테 고백할 거예요?"
하린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태우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사람, 완벽해 보이긴 하지만, 하린 씨한테 진심일까요?"
그의 말에 하린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제가 판단할 일이에요. 강태우 씨는 너무 참견하지 마세요."
태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지켜볼게요. 하지만, 하린 씨가 상처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하린은 태우의 진지한 표정에 잠시 흔들렸지만, 고개를 돌렸다.
"감사해요. 하지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녁이 되자 하린은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플랫폼에서 윤재 선배와 우연히 마주쳤다.
윤재는 그녀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
"하린 씨? 여기서 보네요. 같이 집에 갈래요?"
하린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윤재는 그녀에게 업무 이야기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하린 씨, 요즘 어떻게 지내요? 힘든 건 없어요?"
그의 다정한 목소리에 하린은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네, 괜찮아요. 선배는요?"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하린 씨가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보여서요."
하린은 그의 말에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윤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지하철이 도착하자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하린은 윤재와의 대화 속에서 조금씩 자신감을 되찾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태우의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의 진지한 표정과 말이 묘하게 신경 쓰였다.
'왜 그 사람 말이 자꾸 떠오르는 거지?'
하린은 복잡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윤재와 태우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들이 뒤섞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