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하린은 회사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업무에 몰두하려 애썼지만, 어제 윤재와의 지하철에서의 대화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의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한 미소는 하린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윤재가 그녀의 자리로 다가왔다.
"하린 씨, 오늘 저녁 시간 괜찮아요?"
하린은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 오늘 저녁이요?"
윤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같이 저녁 먹으려고요. 하린 씨한테 고마운 일도 많았고, 요즘 힘들어 보여서요."
하린의 심장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 네, 괜찮아요."
"그럼 퇴근 후에 로비에서 봐요."
윤재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하린은 하루 종일 마음이 설렜다. 퇴근 후에 있을 윤재와의 식사가 데이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괜찮아. 너무 꾸미면 안 돼.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스스로를 다독이며 로비로 내려간 하린은 윤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재는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타났다.
평소보다 편안한 차림의 그는 더욱 부드럽고 친근해 보였다.
"기다렸어요? 바로 가요."
윤재가 선택한 식당은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하린은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조금 긴장했다.
평소 가던 곳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어색함이 느껴졌다.
"여기 괜찮죠? 저도 자주 오는 곳은 아닌데, 하린 씨랑 오면 좋을 것 같아서요."
하린은 놀라며 물었다.
"정말요? 저 때문이라고요?"
윤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린 씨는 특별하니까요."
그의 말에 하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메뉴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윤재의 다정한 말투와 시선이 그녀의 신경을 계속 자극했다.
식사가 시작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하린은 윤재가 일상적인 이야기부터 회사 얘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이끄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의 배려 깊은 태도는 하린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하린 씨, 회사에서 일할 때 많이 힘들죠? 제가 봤을 땐 하린 씨가 정말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하린은 고개를 저으며 겸손하게 답했다.
"아니에요, 선배가 더 열심히 하시잖아요.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윤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하린 씨가 있어서 저도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그의 진심 어린 말에 하린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식사가 끝난 후, 윤재는 하린을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하린은 고맙지만 부담스러워서 거절하려 했지만, 윤재의 고집에 결국 수락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밤길을 함께했다.
"하린 씨, 요즘 뭐 고민 같은 거 있어요?"
윤재의 질문에 하린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아니요. 그냥... 조금 정신없이 지내고 있어요."
윤재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요. 제가 도울게요."
하린은 그의 다정한 말에 다시 한 번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태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윤재 선배가 진짜로 진심일까?'
집에 도착한 하린은 윤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선배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어요."
윤재는 따뜻한 미소로 답했다.
"저도요. 다음에 또 같이 밥 먹어요."
하린은 집 안으로 들어오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윤재와의 식사는 완벽했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한숨을 쉬며 태우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태우 씨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윤재 선배가 진심이 아닐 거라는 건 무슨 뜻이지?'
하린은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