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작은 변화

12화: 작은 변화

소은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밤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도윤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의 야근이 잦아졌고, 식사를 거르고 오는 날도 많았다.

처음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며칠 전 그가 피곤한 얼굴로 라면 하나 끓여 먹고 쓰러지는 모습을 본 후로는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는 냉장고를 열고 재료들을 하나둘 꺼냈다.

간단한 된장국과 반찬 몇 가지, 그리고 따뜻한 밥 한 공기.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집밥 같은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고 싶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식사만큼은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국을 덜어놓고 있을 때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소은이 고개를 들었다.

도윤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들어왔다.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고,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재킷을 벗었다.

그녀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안 자고 있었어요?”

“야근이 계속되시길래, 그냥 가볍게 저녁 준비했어요.”

소은은 자연스럽게 상을 차리며 말했다.

도윤은 식탁을 바라보며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일부러 기다린 거예요?”

“그냥… 피곤하실 것 같아서요.”

그는 한순간 말없이 서 있었다.

그러다 이내 조용히 의자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밥을 한술 뜨고 국을 맛본 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요.”

소은은 안도하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에요. 급하게 만든 거라 맛이 괜찮을까 걱정했어요.”

“괜찮아요. 집밥 같은 느낌이네요.”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지만, 어색하지 않았다.

도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식사는 천천히 이어졌다.

소은은 그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도윤도 무심히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날 이후, 도윤이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소은은 간단한 저녁을 준비했다.

처음엔 별말 없이 먹던 도윤도 점점 자연스럽게

그녀가 차린 음식을 받아들였고, 가끔씩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도윤이 식사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물었다.

“요즘 작업은 어때요?”

소은은 놀란 듯 잠시 멈칫했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번에 디자인 공모전에 지원했어요.

가을 패션 컬렉션 콘셉트인데, 자연과 조화를 주제로 작업하고 있어요.”

도윤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패션 공모전?”

“네. 올해 트렌드인 따뜻한 색감과 레이어드를 활용해서

실용적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해요.

디테일을 살리는 게 중요해서 조금 고민 중이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소은은 눈을 반짝이며 설명했다.

도윤은 그녀의 모습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하던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이렇게 생기 넘치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직접 디자인한 걸 볼 수 있을까요?”

소은은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작업실에 가면 스케치가 있어요.”

둘은 자연스럽게 작업실로 향했다.

소은이 책상 위에 놓인 스케치북을 펼치자,

섬세한 선들로 이루어진 컬렉션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톤의 색감이 강조된 의상들이 독특한 감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도윤은 조용히 그림을 바라보았다.

한 장, 두 장 넘길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느껴졌다.

“정말 정교하네요.”

“그렇게 보이세요?”

“네. 디자인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균형이 잘 잡혀 있어요.”

소은은 순간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도윤이 이런 칭찬을 건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디테일이 많네요. 옷 디자인이 단순한 줄 알았는데.”

“작은 요소들이 모여야 전체적인 분위기가 완성돼요. 특히 소재나 패턴이 중요해서….”

소은은 도윤이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이 신기했다.

보통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감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는 예상 외로 세세한 부분을 짚었다.

“공모전, 잘될 것 같아요.”

그의 말에 소은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날 밤, 소은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도윤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다가가 그 맞은편에 앉았다.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요즘 야근도 많고, 피곤해 보이세요.”

도윤은 피식 웃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그러게요. 요즘 정신이 없긴 하죠.”

소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래도 밥은 잘 챙겨 드셨으면 해요.”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계약 관계로 시작했지만, 그녀는 점점 그의 일상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의 일상은 더욱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여전히 계약이란 틀 안에 있었지만, 서로를 향한 작은 배려들이 쌓이고 있었다.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13화: 흔들리는 감정

13화: 흔들리는 감정

소은은 공모전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디자인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책상 위에는 다양한 스케치와 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