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최종 발표일,
소은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표가 이루어지는 단상 위에는 공모전 관계자가 서 있었고,
마이크 너머로 지원자들의 닉네임이 하나씩 불려졌다.
그녀의 손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그럼 지금부터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겠습니다.”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결과를 기다렸다.
“최종 합격자는—— 닉네임 ‘Luna’입니다!”
순간,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시간마저 멈춘 것 같았다.
소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하니 무대를 바라봤다.
닉네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고 있다가, 주변에서 터지는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옆에 있던 동기가 팔을 흔들며 말했다.
“소은아, 네 닉네임 맞잖아! 어서 올라가!”
그제야 그녀는 떨리는 다리로 단상으로 향했다.
심사위원이 트로피를 건네며 미소 지었다.
“축하합니다. ‘Luna’라는 이름으로 제출하신 디자인은 심사위원단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트로피를 손에 쥐는 순간, 소은은 이제야 실감이 났다.
자신이 이뤄낸 성과였다.
공모전 발표 후, 도윤은 바쁜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현관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소은이 귀가한 듯했다. 그녀는 손에 트로피를 들고 있었고,
표정에는 아직도 기쁨과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도윤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축하드립니다.”
소은은 그를 보자마자 멈칫했다.
도윤이 먼저 축하한다는 말을 건넨 것이 처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조금 쑥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사실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그럴 만하죠.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까요.”
그의 말에 소은은 순간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계약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그녀의 꿈을 존중해 주었다.
도윤은 그녀의 손에 들린 트로피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 트로피, 잘 어울리네요. 원래부터 당신 것이었던 것처럼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도윤은 뭔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작은 상자였다.
"이건 뭐예요?"
"수상 축하 선물입니다."
소은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고급스러운 펜이 들어 있었다.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는 펜이겠죠.”
소은은 감동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이거, 정말 감사해요. 이런 선물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요."
"당신이 계속 그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소은의 동기들은 그녀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이건 당연히 축하해야죠!”
친구들이 한마디씩 거들며 그녀를 설득했고, 소은도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파티는 도심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그녀는 축하를 받으며 동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우연히, 도윤이 업무를 마치고 지나가던 길에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있는 소은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동기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한 남자와 유독 가깝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도윤은 차를 세우고 잠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남자는 소은과 다정하게 웃으며 잔을 기울였다. 그녀도 편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이건 단순한 감정일까? 아니면… 질투?
아니, 그는 질투할 자격이 없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다른 남자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신경 쓰였다.
마치 그녀가 점점 자신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도윤은 조용한 거실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점점 자신의 곁을 떠나려 하는 걸까?
자신이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익숙해진 관계가 깨질까 두려운 걸까.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원래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곁에 있는 순간부터 그녀는 재벌가의 복잡한 환경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녀의 미래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했다.
소은은 밤늦게 귀가했다. 도윤이 아직 거실에서 깨어 있는 걸 보고 놀랐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도윤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잠이 안 와서…”
소은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친구들이 축하해줘서 조금 늦었어요.”
"그래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차가웠다.
소은은 그가 평소보다 말을 아끼는 걸 느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우리는 계약 관계 아닌가.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녀가 신경 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