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은 아침부터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공모전 최종 결과 발표가 있던 날 이후로
인터넷에서는 ‘강도윤 아내 특혜 논란’이라는 기사들이 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루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와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점점 강한 어조로
소은을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공정한 경쟁이 맞긴 한 건가요?
재벌가 며느리라는 게 알려진 순간부터 이미 판이 기울어진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은 취업 걱정하면서 공모전 하나하나 절박하게 준비하는데,
누구는 ‘빽’으로 쉽게 성공하네요."
처음엔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논란은 더 커졌고,
심지어 몇몇 온라인 기사에서는
공모전 주최 측에 강도윤이 압력을 넣었다는 식의 근거 없는 소문까지 퍼졌다.
소은은 믿을 수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식탁에 앉아 있었다. 불안한 손끝이 살짝 떨렸다.
"무슨 일이에요?"
도윤이 거실을 지나가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다가왔다.
소은은 망설이다가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도윤은 화면을 읽고는 굳은 표정이 되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왜..."
그는 화면을 넘기며 기사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대다수의 기사들은 신빙성 없는 루머를 그대로 가져다 쓰며
‘강도윤의 영향력’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있었다.
"이거, 명백히 조작된 기사입니다."
도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감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분노가 묻어나왔다.
"아버지겠죠. 또다시 나를 압박하려는 수단으로 소은 씨를 이용하는 거예요."
소은은 그의 말을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강 회장이 정말 이런 기사들을 조작한 걸까?
하지만 단순한 루머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타이밍도 절묘했다.
"도윤 씨가 막을 방법은 없나요?"
소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윤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당장 언론사에 압박을 가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예요.
이미 사람들은 ‘숨기는 게 있다’는 시선으로 보고 있으니까.
괜히 손을 대면 더 크게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냥 두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아니요. 누가 이런 기사를 퍼뜨렸는지 추적할 거예요.
분명히 아버지의 손이 닿았겠지만,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도윤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전화가 끝난 뒤, 그는 소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움직일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날 오후, 강 회장은 고급 호텔 라운지에서 도윤을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이미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고,
그는 잔을 천천히 들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윤이 도착하자마자 강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
"본론부터 말하죠. 이 기사, 아버지가 조작한 거죠?"
도윤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강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기사가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거다.
그리고 보니, 네가 요즘 꽤 주목받고 있더군.
‘이사회에서도 후계자로 적합하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래서 일부러 이런 일을 벌인 겁니까?"
도윤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강 회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도윤아, 넌 원래 이런 자리에는 관심 없었잖아.
그런데 결혼 후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지? 네가 책임감 있는 남자처럼 보이니까.
네가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사회 멤버들도 생겼고.
네 인기가 올라가는 게 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단 말이다."
"결국, 저를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게 목적이군요."
강 회장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원래 원하지 않던 자리잖아. 네가 후계자에서 자연스럽게 내려온다면,
나는 더 이상 너를 방해할 이유가 없지. 그 아이도 마찬가지고."
"협박이네요."
"협박이라기보단 조언이다. 네가 원하지도 않는 싸움을 하지 말라는 거야.
너도 알잖아? 네가 버티면 버틸수록, 그 여자아이가 더 많은 걸 감당해야 할 거라는 걸."
도윤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강 회장은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고집을 부리면 또다시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걸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잘 생각해봐라."
강 회장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도윤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소은은 작업실에서 디자인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지만,
평소와 달리 어두운 표정을 한 그를 보고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벽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소은은 천천히 다가가 그의 곁에 섰다.
"강 회장님을 만나고 오셨죠?"
그녀의 조용한 질문에 도윤은 고개를 들었다.
"내가 계속 버틴다면, 아버지는 당신을 더 힘들게 할 겁니다."
소은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윤이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포기할 거예요?"
도윤은 대답 대신 소은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지 말라는 간절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도윤은 깨달았다.
소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 싸움을 멈춰야 한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