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흔들리는 신뢰

19화: 흔들리는 신뢰

공모전 최종 발표 이후, 소은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심사위원단은 엄격한 심사를 거쳐 그녀의 디자인을 선정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끊임없이 그녀를 둘러싼 루머와 비난이 오갔다.

"재벌가 며느리가 무슨 공모전이야. 그냥 디자이너 브랜드 하나 차려서 하면 되지 않아?"

"진짜 실력으로 뽑힌 게 맞을까? 심사위원들도 다 재벌과 연관 있는 사람들이던데?"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뭐가 되지?"

익명의 댓글들은 독처럼 그녀를 잠식했다.

익명성 뒤에 숨어 마구 쏟아내는 독설들이,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날도 소은은 작업실에서 홀로 밤을 새우고 있었다.

연필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처음에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말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었다.

그녀는 작업 중이던 디자인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작업실 문이 열렸다.

"또 기사가 떴나요?"

도윤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아 화면을 확인하곤 이내 인상을 찌푸렸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소은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노력해서 얻은 결과였는데, 이제는 그냥 ‘특혜’라고만 여겨져요.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 해도, 모두가 그렇게 믿어버리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반박하면 되잖아요. 정당하게 받은 결과라고 당당하게 말해야죠."

도윤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소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이미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조차도 이 수상이 기쁜 일이 아니게 돼버렸어요."

도윤은 그녀의 말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감싸주고 싶어도, 그녀가 견뎌야 하는 감정까지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날 저녁, 도윤은 강 회장을 찾아갔다.

"그만하세요."

강 회장은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도윤을 바라보았다.

“뭘 그만하라는 거냐?”

“그 아이를 건드리는 거 말입니다. 공모전 논란, 언론 조작, 다 아버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잖아요.”

강 회장은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증거라도 있나?”

“없다고 생각하세요?”

도윤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미 알아볼 건 다 알아봤어요.

아버지가 언론사 몇 군데를 압박해서 이슈를 키운 거 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하시죠.”

강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윤 앞까지 걸어왔다.

“그래서, 어쩔 건데? 네가 이 일에 개입해서 뭐라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소은 씨를 계속 괴롭히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강 회장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알잖아? 네가 아무리 움직여도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사람들은 진실보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믿는 법이지.”

도윤은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저는 이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를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강 회장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그래, 이제야 본심이 나오는구나.”

강 회장은 피식 웃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럼, 더 이상 이 싸움에서 이길 생각은 하지 마라.”

도윤이 눈살을 찌푸리자, 강 회장은 서류를 정리하며 조용히 덧붙였다.

"회사는 감정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올바른 후계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인사는 단순한 개인 감정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는 도윤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넌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 있나? 이 회사를 네가 이끌어야 하는 이유를."

도윤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는 강 회장의 비열한 방식이 불쾌했지만, 동시에 그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 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댔다.

“그러니 선택해라. 회사를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이게 최선의 방법이다.”

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강 회장이 원하는 건 결국 자신이 스스로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소은을 이용하고 있었다. 도윤은 이를 막아야 했다.

그날 밤, 도윤은 다시 작업실로 돌아왔다.

소은은 여전히 책상 앞에서 스케치를 보고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연필을 쥔 손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저녁 안 먹었죠?" 도윤이 물었다.

소은은 고개를 저었다.

"입맛이 없어서요."

도윤은 한숨을 쉬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잠시 후,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간단한 샌드위치를 가져와 그녀 앞에 놓았다.

"적어도 이거라도 먹어요."

소은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녀는 천천히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처음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도윤은 그녀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결심했다.

강 회장이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는 소은을 지켜야 했다.

20화: 현실적인 벽

20화: 현실적인 벽

소은은 강의실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평소처럼 강의에 들어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요즘 들어 캠퍼스가 낯설게 느껴졌다. 공모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