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희생의 그림자

21화: 희생의 그림자

다음 날, 도윤은 소은이 출근한 후 강 회장을 찾아갔다.

"이제 정말 그만하시죠."

강 회장은 고개를 들며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만하라니, 무슨 말인가?"

도윤은 강 회장의 태연한 모습에 더욱 분노가 치밀었다.

"공모전 논란, 언론 조작… 전부 아버지가 꾸민 일이잖아요. 이제 그만하시라고요."

강 회장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도윤을 바라보았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증거라도 있나 보지?"

"증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했을 거라는 건 분명하니까요."

강 회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넌 어쩔 작정이지? 계속 나한테 맞서겠다는 건가?"

"그 아이를 더 이상 건드리지 마세요.

아버지가 원하는 게 결국 제 후계자 자리에서의 퇴진이라면, 저와 직접 해결하세요.

애꿎은 사람을 희생시키지 말고요."

강 회장은 천천히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며 도윤을 바라보았다.

"흥미롭군. 너도 이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야.

그래, 네가 스스로 내려온다면 나도 굳이 불필요한 수를 쓸 필요는 없겠지."

도윤은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 아이는 네 인생에 필요 없는 존재야. 어차피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 아닌가?"

"……."

"네가 그 아이와 함께하는 한, 넌 이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없을 거다.

나는 오래전부터 후계자는 정해져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네가 이 자리를 놓지 않으려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네 약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다."

도윤은 강 회장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소은 씨를 더 괴롭힐 생각이신가요?"

강 회장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지. 사람들의 시선이 이미 그녀를 향하고 있지 않나?

공모전 특혜 논란도 그렇고, 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끊임없이 공격받을 거다."

"……."

"언론이 그녀를 계속 물고 늘어지면,

네가 아무리 막으려 해도 상처 입을 수밖에 없어. 그녀가 견딜 수 있을까?

아니, 네가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도윤은 강 회장을 노려보았다.

"결국 원하는 게 뭐죠?"

"네가 이 회사를 떠나겠다고 하면, 그 아이를 건드릴 이유가 없어진다는 거다. 단순한 거래지."

도윤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강 회장은 이미 그의 가장 약한 부분을 정확히 찔러오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후계자 자리를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소은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강 회장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봐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이는 점점 더 힘들어질 거다.

네가 감정을 앞세우면,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나?"

도윤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이 싸움을 어떻게든 끝내야 했다.

그러나 그 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도윤은 강 회장의 사무실을 나서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강 회장의 말대로라면, 소은이 계속해서 상처받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

그가 아무리 소은을 지키려고 해도,

강 회장의 영향력과 언론의 관심 속에서 그녀를 온전히 보호하기란 불가능했다.

소은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떠난다고 해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차로 돌아온 도윤은 핸들을 잡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선택에 따라 소은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었다.

지금 당장 그녀를 지키려 한다면 더 깊은 늪에 빠질 것이고,

거리를 두면 그녀가 상처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하는 순간, 그는 그녀를 완전히 잃게 될지도 몰랐다.

그날 저녁, 도윤은 집으로 돌아와 소은을 찾았다.

그녀는 거실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새로운 디자인 스케치들이 널브러져 있었지만, 손놀림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녀가 고민하고 있다는 게 단번에 보였다.

도윤은 조용히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요?"

소은은 펜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피곤함이 서려 있었다.

"괜찮았어요."

그러나 도윤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거짓말."

그녀는 피식 웃었다.

"티가 났나요?"

"많이요."

소은은 잠시 침묵하다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힘들어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막상 마주하면 쉽지 않네요.

저 혼자 괜찮다고 생각해봤자, 계속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흔들려요."

도윤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소은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이 모든 게 저 혼자 감당하기엔 벅차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도윤은 그런 그녀를 지켜보며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소은 씨."

그녀가 도윤을 바라보았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말해요."

소은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건 제 문제니까요. 제가 해결해야 해요."

도윤은 그녀의 손끝이 떨리는 것을 보며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제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소은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떠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함께 싸울 것인지.

며칠 후, 강 회장은 언론을 통해 또 한 번 압박을 가했다.

소은이 수상한 공모전 주최 측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며,

익명의 제보자가 ‘특혜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기사를 냈다.

또다시 인터넷과 뉴스는 이 논란으로 떠들썩했다.

공모전 주최 측은 ‘심사는 철저하게 진행되었으며, 외부 개입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이미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었다.

소은은 작업실에서 뉴스를 보고 손을 떨었다.

이제는 그냥 지나가는 루머가 아니었다.

그녀의 미래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도윤이었다.

소은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전화를 받았다.

"도윤 씨…"

"괜찮아요?"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도윤은 그 말 한마디에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늘 강한 척했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상처받고 있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소은 씨."

"네…"

"내일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

소은은 당황한 듯 물었다.

"무슨 일인데요?"

"우리,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너무 지쳐서 깊게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알겠어요. 내일 봐요."

전화를 끊은 후, 도윤은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소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조용히 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강 회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좋은 선택이다."

그렇게, 도윤은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그 선택이, 오히려 서로를 더 깊은 상처로 몰아넣게 될 거라는 것을.

22화: 강회장의 계략

22화: 강회장의 계략

아침부터 집 안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소은은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녀는 요즘 온라인 뉴스나 기사들을 되도록 멀리하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불길한 기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