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저녁은 늘 그렇듯 바빴다.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도로 위의 차량들은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사람들은 바삐 어딘가로 향했고,
마치 이 도시에서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도태될 것처럼 보였다. 최수연도 그들 중 하나였다.
“수연 씨, 오늘 회식 있잖아. 같이 갈 거지?”
동료의 밝은 목소리에 수연은 멈칫했다.
그녀는 책상 위에서 서류를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10시간 넘게 형광등 불빛 아래서 모니터를 바라보느라 피곤한 눈을 비비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좀 피곤해서… 다음에 같이 가요.”
“에이, 너무 일에만 몰두하는 거 아니야? 가끔은 좀 쉬어야지!”
동료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다.
수연은 그가 자리를 뜨자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은 쉬어야지…’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조차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씻고 잠드는 것이 전부였다.
주말에도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부족한 업무를 정리하느라 바빴다.
그녀에게 여유라는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길게 늘어진 도로 위를 수없이 많은 자동차들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불빛이 마치 은하수처럼 찬란하게 반짝였다.
그 반짝임 속에서 문득 자신의 하루가 무색하게 느껴졌다.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는 삶이었다.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10년 전, 그녀는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무대 위에서 춤추는 것을 사랑했고,
그 시간이 그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기대는 달랐다.
“수연아, 춤이 무슨 밥 먹여주는 일이야? 이제 현실을 좀 보자.”
아버지의 단호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결국 그녀는 발레를 포기했고, 부모님이 원했던 대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다.
그렇게 모든 게 정해진 듯 살아왔다.
하지만… 정말 이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버스가 도착했고, 그녀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차에 올랐다.
사람들 틈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었다.
익숙한 클래식 선율이 귓가를 울렸다.
차창 너머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풍경이 그녀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었다.
내릴 정류장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바라보았다.
작은 광장이 보였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곳이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시선이 머물렀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자유로운 몸짓이었다.
하지만 절도와 힘이 느껴졌다.
단순한 취미나 거리 공연이 아니었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확신과 세월이 담겨 있었다.
수연은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공기마저 멈춘 듯한 순간이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물 흐르듯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했다.
한 손을 허공에 뻗었다가 급격히 몸을 회전시키는 동작,
그러고는 강렬한 스텝으로 바닥을 힘차게 박차며 균형을 잡았다.
발끝에서부터 전해지는 탄력적인 움직임은 마치 음악과 하나가 된 듯 자연스러웠다.
그의 몸짓에는 절제된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었다.
빠른 템포의 리듬이 울려 퍼지는 순간,
그는 거침없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공중에서 한 바퀴를 가볍게 회전한 뒤
정확한 타이밍에 착지하는 동작은 숨이 멎을 정도로 완벽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
그리고 마지막 포즈까지 흐트러짐 없이 이어졌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원래라면 곧장 집으로 향했겠지만,
그녀는 충동적으로 벨을 눌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광장으로 향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남자는 가볍게 인사했지만, 표정은 시큰둥했다.
수연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방금 춤… 정말 멋졌어요.”
남자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어딘가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숨어 있었다.
“…고맙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놓인 작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저기 실례가 안된다면, 혹시 무용수 이신가요? 아니면 안무가?”
학생 시절 발레리나를 꿈꿨던 수연은 그의 멋진 버스킹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용기가 났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뜻밖의 말을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