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는 손목의 문양을 바라보며 결심했다.
“내가 스스로 이 문양을 끊어내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두려움을 억누르고 있었다.
문양을 제거하면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재현이 말한 대로 그 대가는 분명 클 것이다.
재현은 그녀를 깊이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그 선택을 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이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그동안 내가 조율했던 죽음들이 떠오르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어요. 내 선택으로 모든 걸 끝낼 거예요.”
하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좋아. 그 결심을 유지하기만 하면 돼.”
하지만 재현은 여전히 그녀를 지켜보며 속삭였다.
“당신은 아직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그 순간, 손목의 문양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나의 선택을 막으려는 듯, 문양이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으윽…!”
이나는 손목을 움켜쥐었다.
뜨거운 고통이 손목에서 퍼져 온몸을 휘감았다.
“이게… 뭐죠…?”
하진우는 그녀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문양을 끊어내기 위해선 너의 영혼에 새겨진 계약을 직접 파기해야 해. 그 과정에서 너는 영혼의 일부를 잃게 될 거야.”
“영혼의 일부를… 잃는다고요?”
하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걸 감수하면 너는 자유로워질 수 있어.”
이나는 손목의 문양을 쳐다봤다.
그 문양은 여전히 붉은빛을 내며 고통을 주고 있었다.
‘내가 이걸 끊어낼 수 있을까…?’
그때, 허공에 또 다른 이름이 떠올랐다.
‘윤재희 – 2025년 3월 1일.’
이나는 그 이름을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재희… 내 동생이…”
재현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낮게 말했다.
“당신이 문양을 끊어내면 그녀의 죽음은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는 당신이 지게 되겠죠.”
이나는 손목을 꽉 잡고 이를 악물었다.
‘내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어.’
하진우가 손을 뻗어 이나의 손목 위에 손을 얹었다.
“자, 이제 문양을 끊어내자.”
그의 손끝에서 차가운 빛이 번지며 문양을 감싸기 시작했다.
“이건 네가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야. 고통을 견뎌야 해.”
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내가 할 수 있어요.”
그 순간, 문양이 붉은빛을 내며 더욱 강렬하게 빛났다.
손목에서 시작된 고통이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아… 으아악!”
이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온몸이 타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지만, 그녀는 손을 놓지 않았다.
‘재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이 고통쯤은 견딜 수 있어.’
재현은 그녀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건 당신이 선택한 길입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정말 옳은 걸까요?”
이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내 동생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옳은 선택이에요.”
시간이 흐르고, 문양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손목에 새겨졌던 검은 문양은 이제 희미해졌고,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이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헐떡였다.
“끝났어요…?”
하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넌 계약에서 자유로워졌어.”
하지만 재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이나는 고개를 들었다.
“제가 잃은 게 뭐죠?”
재현은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일부는 이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당신이 잃은 것은 다름 아닌… 시간입니다.”
“시간…?”
재현은 그녀를 깊이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더 이상 평범한 시간 속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죽음의 중개자로서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어요. 당신은 이제 세상에 남은 시간과 조금씩 멀어질 겁니다.”
이나는 그의 말을 듣고 아찔함을 느꼈다.
‘난 이제…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건가?’
그때, 문이 열리고 윤재희가 나타났다.
“언니! 여기 있었어?”
재희는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잖아.”
이나는 동생을 바라보며 눈물이 맺혔다.
재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도… 재희를 살릴 수 있었어.’
하지만 그녀의 가슴속엔 깊은 고독이 남아 있었다.
‘내가 잃은 건 나 자신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