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영이 떠난 뒤, 카페는 다시 고요해졌다.
이나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마음은 복잡했다.
‘첫 번째 거래가 끝났다… 하지만 기분이 왜 이럴까?’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사람이 정해져 있었고, 그녀는 그 죽음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해 돕기로 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무거운 죄책감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제 됐어요?”
이나는 테이블 너머에 서 있는 서재현을 향해 물었다.
“첫 번째 거래가 끝났으니, 내 빚을 없애 줄 거죠?”
재현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 어두웠다.
“물론입니다. 당신의 빚 중 일부는 이제 사라졌어요.”
“일부요?”
이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당신이 다 없애준다고 했잖아요.”
재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 우리가 함께할 거래가 더 남아 있으니까요. 한 번의 거래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이나는 그의 태연한 말에 화가 났다.
“당신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나를 끌어들이려 한 거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건 당신이 선택한 일이기도 하죠.”
재현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차분하게 말했다.
“당신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합니다. 고통 없이 그들이 떠나길 원하죠. 그렇다면 이 거래는 나쁘지 않은 선택 아닙니까?”
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당신이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다는 걸 정당화하는 말일 뿐이에요.”
재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말을 흘려들었다.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계약을 맺었으니까요.”
그는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검은 문양을 가리켰다.
“이 문양은 당신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죠. 그리고 죽음의 거래는 당신을 통해 계속될 겁니다.”
이나는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문양이 희미하게 빛을 내며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이 문양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재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문양은 당신이 계약을 맺은 순간부터 영원히 당신과 함께할 겁니다.”
이나는 그의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후퇴할 수는 없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었다.
이나는 커피잔을 치우며 재현에게 물었다.
“다음 거래는 언제쯤 이뤄질까요?”
재현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곧 또 다른 죽음이 찾아올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불길하게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먼저 그 죽음을 감지하게 될 거예요.”
“제가요?”
“문양이 당신에게 경고를 줄 겁니다. 손목의 문양이 뜨거워질 때, 그건 누군가가 곧 죽음을 맞이할 신호죠.”
이나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내가 그런 걸 느낄 수 있게 되는 걸까?’
그 순간, 손목의 문양이 갑자기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나는 화들짝 놀라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건…!”
재현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다음 거래가 시작된 겁니다.”
이나는 손목의 문양이 달아오르는 느낌을 따라 카페 밖으로 나섰다.
시골 마을 거리에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어느 방향으로 이끌렸다.
그리고 멈춰 선 곳은 마을 병원이었다.
“왜 여기에…?”
이나는 병원의 불이 꺼져 있는 걸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병원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중년의 의사였다.
이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박 원장님…”
박 원장은 늘 마을 주민들을 돌봐주던 친절한 의사였다.
그가 이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이나 씨,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어요?”
이나는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그냥… 산책하다가 들렀어요.”
그러나 그녀의 손목 문양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마치 그 남자가 곧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걸 경고하는 듯했다.
‘설마, 박 원장님이…?’
그때, 재현이 이나의 곁으로 나타났다.
“이번에도 당신이 그를 돕겠습니까?”
이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분이… 곧 죽는다는 거예요?”
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선택을 해야 하죠. 그가 고통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돕겠습니까?”
이나는 손목의 문양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는 길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선택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