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두 번째 거래

6화: 두 번째 거래

어둠이 내려앉은 병원 앞, 윤이나는 손목의 문양이 뜨겁게 타오르는 걸 느꼈다.

그녀의 시선은 병원에서 나온 박 원장을 향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친절했던 그 의사가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라니.

‘이번에도 내가 그 죽음을 막을 수는 없는 걸까?’

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귓가에 재현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당신이 직접 선택해야 합니다. 그의 죽음을 고통스럽지 않게 만들지, 아니면 방관할지는 당신의 몫입니다.”

이나는 고개를 들어 재현을 바라봤다.

“정말 그분이 죽게 되는 게 확실한가요?”

재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박 원장은 이미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당신이 돕지 않으면, 그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겁니다.”

이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박 원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분이 중병을 앓고 있다니… 정말일까?’

하지만 그녀의 손목에 새겨진 문양은 계속해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을 알려주는 경고였다.


박 원장은 병원 문을 잠그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이나를 보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윤이나 씨, 이런 시간에 병원 앞에 있으면 위험해요. 어두워지면 사고가 나기 쉽거든요.”

이나는 박 원장의 따뜻한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정말 좋은 분이신데… 이런 분이 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걸까?’

그때 재현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눠 그의 마음을 풀어주세요. 그가 후회 없이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당신의 역할입니다.”

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제 선택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원장님.”

이나가 그를 부르자 박 원장이 고개를 돌렸다.

“네, 무슨 일이죠?”

이나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요즘 힘드신 건 없으세요?”

박 원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요?”

이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병원 운영하시느라 피곤하지 않으실까 해서요.”

박 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힘들 때도 많죠.”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의사로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때로는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죠.”

이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면, 혹은 내가 더 많은 걸 알았다면 이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그의 말에서 느껴지는 깊은 후회가 이나의 가슴을 찌르듯 아팠다.

‘이분도 후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그때 재현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의 후회를 덜어주세요. 그가 인생을 후회로 마무리하지 않도록.”

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님.”

박 원장이 이나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충분히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모든 걸 다 구할 수는 없더라도, 당신이 구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박 원장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생각해줄 사람이 있다니 고맙네요.”

이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동안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신 건 아닐까요? 이제는 조금 놓아도 되지 않을까요?”

박 원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놓아버리는 게 쉬울까요?”

“네. 원장님은 충분히 잘 해오셨으니까요.”

그 순간, 박 원장의 표정이 조금 편안해지는 듯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그때, 허공에 검은 빛이 피어올랐다.

박 원장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재현의 손에 나타났다.

“두 번째 거래가 완료되었습니다.”

재현이 조용히 말했다.

이나는 종이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 원장님은 어떻게 되는 거죠?”

재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고통 없이, 후회 없이.”

이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 한편은 여전히 무거웠다.

‘또 한 번의 죽음을 조율했어. 이게… 옳은 걸까?’

재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이해했을 겁니다. 죽음을 거래하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이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지만… 죽음을 조율하는 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아요.”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익숙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을 돕는 겁니다.”

이나는 그의 말을 듣고 손목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 문양은 이제 더 이상 불길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이 길을 선택한 거라면… 끝까지 가야 해.’


그러나 그 순간.

재현이 갑자기 표정을 굳히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하군.”

이나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죠?”

재현은 허공을 응시하며 차갑게 말했다.

“우리의 거래를 방해하려는 자가 나타났습니다.”

이나는 그의 말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방해하려는 자요?”

재현의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다른 중개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군요. 곧 그들이 당신을 찾아올 겁니다.”


7화: 새로운 중개자의 등장

7화: 새로운 중개자의 등장

윤이나는 재현의 경고에 몸이 굳었다. “다른 중개자들이요? 그게 무슨 뜻이죠?” 재현은 창밖 어둠을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그의 표정은 날카롭고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