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나는 재희의 손을 꼭 잡은 채 결심했다.
‘이번엔 그저 죽음을 조율하는 게 아니라, 재희의 운명을 바꿀 거야.’
그녀의 마음속엔 두려움과 죄책감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단단한 의지도 피어올랐다.
이번만큼은 거래가 아닌 구원이 필요했다.
“재희야.”
재희는 눈을 깜빡이며 언니를 바라봤다.
“왜 그래, 언니? 표정이 왜 이렇게 심각해?”
이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어…’
그때, 재현이 조용히 나타나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의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눈빛은 깊은 어둠을 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재현의 말에 이나는 벌떡 일어섰다.
“내 동생을 죽게 둘 수는 없어. 이번엔 내가 막을 거야.”
재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해진 죽음은 피할 수 없어요. 당신이 조율하지 않으면, 그녀는 더 고통스럽고 참혹하게 죽게 될 겁니다.”
“거짓말이야.”
이나는 재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외쳤다.
“당신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만 말하지만, 내가 그걸 믿지 않으면 어떡할 건데요?”
재현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와의 계약을 어기게 될 겁니다. 그 결과는 당신도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이나는 손목의 문양을 내려다보았다.
그 문양이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계약을 어기면… 내가 위험해진다고 했지. 하지만 내 동생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게 더 중요해.’
재희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언니, 대체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 거야?”
이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재희야, 혹시… 후회하는 일이 있어?”
재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저었다.
“글쎄… 난 지금 행복해. 직장도 좋고, 친구들도 잘 지내고.”
이나는 동생의 밝은 목소리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정말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잖아… 이런 애가 왜 죽음을 맞이해야 하지?’
그때, 재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돕는다면, 그녀가 고통 없이 떠날 수 있어요.”
이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난 당신이 말하는 방식으로는 동생을 보내지 않을 거예요.”
재현은 이나를 깊이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이나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재희를 살릴 거예요.”
재현은 천천히 다가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당신은 위험한 선택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위험해도 상관없어요. 내 동생을 구할 수 있다면.”
그때, 허공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 걸.”
이나와 재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진우…”
하진우가 모습을 드러내며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윤이나, 당신은 이미 계약을 맺었고, 그 계약을 어기면 대가를 치러야 해.”
이나는 두려움 없이 하진우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그걸 막으러 온 거예요?”
하진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당신을 막으러 온 게 아니야. 오히려 당신이 재현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랄 뿐이지.”
그는 재현을 향해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죽음을 거래하는 자들은 결국 자신도 죽음의 덫에 빠지게 돼. 재현이 그걸 모르고 있을 것 같아?”
재현은 하진우의 말을 흘려듣고 차분하게 말했다.
“난 그런 결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나 하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몰라도, 그녀는 아니야.”
하진우는 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선택해. 네가 계약을 계속 지킬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걸 끝낼 건지.”
이나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계약을 끝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대가는…’
하진우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말했다.
“모든 거래엔 대가가 따르지만, 그 대가가 네 목숨이 될 필요는 없어.”
그의 말이 이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재현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선택하세요, 윤이나 씨.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이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손목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 문양은 여전히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내 선택은…”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내 동생을 살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