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공중에는 다시 한 번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침내, 중앙에 앉아 있던 가장 나이 많은 법관이 입을 열었다.
그의 주위에서 금빛의 실들이 어우러지며 허공에 문자가 새겨졌다.
“지금부터 표결을 진행하겠다.”
그가 손을 흔들자, 허공에 거대한 저울이 떠올랐다.
마법 법정의 심판 방식은 간단했다. 다수결이었다.
서현의 사면을 찬성하는 이들은 오른손을 들었고,
그 순간 허공에서 금빛이 흘러나와 저울의 한쪽으로 내려앉았다.
반대하는 이들은 왼손을 들었다. 붉은빛이 반대편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지민은 조용히 숨을 삼켰다.
마법으로 빚어진 저울이 흔들렸다.
저울의 양쪽에서 퍼져 나오는 마법의 빛이 서로 부딪히며 섬광처럼 번쩍였다.
그리고,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법정 안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허공에서 떠다니던 마법의 빛들이 법관들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며,
결론을 내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수의 의견에 따라, 도망자 서현을 사면한다.”
가장 연장자인 법관이 선고를 내리는 순간, 법정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허공에 떠 있던 저울이 천천히 사라지면서 금빛의 가루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서현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지민은 너무도 강하게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그러나 그 순간, 또 한 번 마법이 일렁였다.
서현의 몸 주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피어오르더니,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마법이었다.
그것은 바람처럼 그의 몸에서 흘러나와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서현아…?”
지민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현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공중에서 무언가를 움직이게 하는 힘도,
시간을 붙잡아 두는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마법이 사라진 것이다.
순간, 지민의 마음 한쪽이 아릿하게 찌르듯 아파왔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한 결과였다.
그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가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서현은 손을 천천히 내리고, 지민을 바라보았다.
“이제… 끝났어.”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오히려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
지민은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래, 끝났어.”
그녀의 손길에 서현은 짧게 숨을 들이마시며 힘을 실었다.
법정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금빛의 룬이 흩어지며 길을 내주었다.
서현과 지민은 조용히 걸어 나왔다.
서현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지민이 옆에서 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들이 문을 나서는 순간, 마법 법정이 뒤로 사라지듯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지민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서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창문 밖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지민도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이 어때?”
지민이 속삭이듯 물었다. 서현은 한참을 생각한 뒤, 짧게 대답했다.
“…이상하게도 편안해.”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짊어진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더 이상 도망자가 아니었다. 더 이상 과거에 묶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민은 그의 손을 다시 한 번 꼭 잡았다.
“나도 그래.”
이제 마법은 사라졌지만,
지민과 서현에게 그 사실은 중요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