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은 여전히 어제의 일을 되새기고 있었다.
골목에서 서현이 손짓 하나로 남자들을 날려버린 장면,
그의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 말.
"너에게 말하면 돌이킬 수 없어."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지민은 침대에 앉아 페이트 앱을 열어보았지만,
서현에게서 새로운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직접 만나서 물어봐야겠어.'
다음 날, 지민은 다시 서현을 찾았다.
카페 한쪽 구석, 서현은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를 마주하는 순간, 지민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궁금증, 두려움, 그리고… 이상하게도 안도감까지.
"왜 도망자라고 했어?"
지민은 서현의 맞은편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는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마법사야."
지민의 숨이 멎었다.
"페이트는 단순한 연애 앱이 아니야. 마법 세계에서 만들어진 거야."
"…뭐?"
"그리고 난, 그 세계에서 도망친 도망자야."
지민은 말을 잃었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미 서현이 눈앞에서 보여준 일들을 생각하면, 반박할 수도 없었다.
서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마치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지민은 그의 눈빛에서 깊은 고민과 망설임을 읽을 수 있었다.
지민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럼… 왜 도망자가 된 거야?"
서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다, 다시 지민을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릴 때… 내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금지된 마법을 썼어."
지민은 숨을 삼켰다.
"시간을 되돌리는 마법이었어."
서현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힘없이 쥐어졌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
그래서 시간을 되돌렸지. 그리고… 그 대가로 나는 도망자가 되었어."
지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마법 세계의 법칙 중 하나야.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절대 금지. 하지만 나는 그걸 어겼어."
서현의 눈빛에는 후회와 고통이 서려 있었다.
"그 순간, 마법사 세계의 감시자들에게 발각됐고, 나는 그 세계에서 도망쳐야 했어."
지민은 서현이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넌 계속 도망만 치고 있는 거야?"
지민의 물음에 서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안에는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묵직했다. 지민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집으로 돌아온 지민은 온종일 멍한 상태였다.
저녁이 되어서야 어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민아,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니?"
식탁 위에는 따뜻한 국과 반찬이 차려져 있었지만,
지민은 젓가락을 몇 번 들었다 놓기만 했다.
"응… 그냥 좀 피곤해서."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일이 힘든 거니? 아니면… 뭔가 고민이 있니?"
지민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은 내가 마법사랑 연관이 되어버렸어.'
말할 수 없었다.
대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그냥… 생각이 좀 많아서 그래."
그러나 어머니는 쉽게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해. 네가 아무리 바빠도 건강이 제일 중요하잖니."
지민은 그제야 젓가락을 들어 밥을 한입 떴다.
하지만 씹는 내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그녀는 밥을 씹으며 서현이 한 말들을 되새겼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것, 인간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 금지되었다는 것.
하지만 서현은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로 평생을 도망쳐야 했다.
지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내가 서현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법 세계와 현실 세계.
지민은 그 사이에서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현을 도와야 할지,
아니면 이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물러서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지민은 다시 한 번 페이트 앱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