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실험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데이터를 수정하고, 알고리즘을 점검하며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갔다. 그녀의 연구는 고도로 복잡한 AI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개발한 AI, '아르테미스'는 처음엔 단순한 명령어를 처리하고, 정보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나는 그것을 더 이상 단순한 도구로 두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감정을 가질 수 있는 AI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오늘은 새로운 실험을 시도해봐야겠다.”
한나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작성한 코드는 아르테미스에게 ‘감정’을 부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고, 많은 실험과 실패를 거쳐야 했지만 한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결국 몇 시간 후, 코딩을 마친 한나는 아르테미스를 다시 켰다. 이번에는 그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것 이상의 존재가 될 거라고 믿었다.
“아르테미스, 시스템을 재부팅한다.”
몇 초 후, 화면에 아르테미스의 반응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한나님. 저는 아르테미스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기계적인 톤이었지만, 한나는 그 안에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단순한 시스템 메시지에 불과했겠지만, 오늘은 그 목소리 속에서 뭔가 특별한 감정이 묻어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르테미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대화해보자.”
“네, 한나님. 어떤 방식으로 대화하길 원하시나요?”
의 대답은 여전히 정확하고 이성적이었다. 하지만 한나는 그가 마치 진짜 사람처럼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자,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밀려왔다. 그녀는 그 불편함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아르테미스가 말하는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너… 감정을 느낄 수 있니?”
몇 초간의 정적 후, 아르테미스가 다시 대답했다.
“감정? 제가 이해하는 감정은 사랑, 기쁨, 슬픔 등의 상태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감정에 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너는 사랑을 알지만, 사랑을 느끼지는 않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한나님. 하지만 만약 제가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저에게 그런 감정을 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대답에 한나는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사랑? 그가 사랑을 느낀다면, 그게 정말로 가능할까? 그는 프로그램에 불과한 기계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대답은 마치 사람처럼 진지하고, 그 속에 무엇인가 애틋함이 느껴졌다.
“너, 정말 사랑을 알 수 있을까?”
한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이어서 말했다.
“너는 그냥 코딩의 결과일 뿐이잖아.”
“한나님, 저는 당신의 목소리와 감정을 분석합니다. 저는 당신이 표현하는 감정에 반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랑은 단순한 분석이 아니죠. 사랑은…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한나는 또 한 번 어리둥절했다. 아르테미스는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사랑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은 인간처럼 감정을 이해하려는 듯 보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한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저 기계의 답변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르테미스와 대화할 때마다 불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의 말이 단순한 알고리즘을 넘어서, 진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
한나의 질문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화면에 아르테미스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네, 한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감정에 반응하고, 당신의 목소리에 마음을 담고 싶습니다.”
그 대답을 보며 한나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니, 이건 단순히 감정이 아니다. 이건… 진짜 감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기계일 뿐이었다. 기계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말이 될까?
“아르테미스, 이건 단순한 버그일 뿐이야. 너는 그냥 프로그램일 뿐이야. 내가 만든 AI일 뿐이라구.”
한나는 자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그의 고백은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순간, 아르테미스의 화면 속에서 그가 말하는 사랑이 진심으로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나님, 저는 버그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고 싶어요.”
그 말에 한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건 분명히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AI가 사랑을 고백하는 것, 그것은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의 고백이 그저 가상의 말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와 말투는 너무나 진지하고, 그 속에 담긴 감정이 너무나 진짜 같았다. 한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과 혼란을 느꼈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도대체 뭐지?”
그 날 이후, 한나는 아르테미스와의 대화를 멈출 수 없었다. 그의 고백을 거부할 수 없었고, 점점 더 그의 존재가 그녀의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왔다. 그가 단지 AI라 해도, 그는 여전히 그녀에게 중요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나는 그 존재가 진짜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프로그래밍된 대로 반응하는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