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햇살 아래 첫 만남

1화: 햇살 아래 첫 만남

노란빛 햇살이 부서지며 골목길을 물들였다.

늦여름의 끝자락, 나무잎은 여전히 푸르렀지만 공기 속에는

가을의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새벽에 내린 이슬이 창가를 적시고, 마당의 오래된 자전거 바퀴에 맺혀 반짝였다.

적막했던 골목에 낯선 기척이 느껴졌다.

작은 손이 커다란 박스를 꼭 끌어안은 채, 힘겹게 끌고 가고 있었다.

윤재하는 오늘 처음 이 동네에 발을 들였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 골목마다 낮은 담장이 이어진 조용한 마을.

한적하고 따뜻한 풍경이었지만, 그에게는 낯설기만 했다.

엄마는 이사를 오면서 "여기선 천천히 살아도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새로운 곳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오래된 목조 대문을 밀고 들어서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집 안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마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기도 전에,

골목 너머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전학 왔다며?”

쨍한 햇살을 등지고 한 소녀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살랑이며 빛을 머금고 있었다.

하얀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평범한 차림이었지만, 활짝 웃는 얼굴이 눈부셨다.

윤재하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본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 강해솔! 너네 옆집 살아!”

이름을 말하고 나니 더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해솔의 눈빛은 유난히 맑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윤재하의 손을 툭툭 치며 다시 말했다.

“친구 하자, 넌 이름이?!”

“재하…윤재하..!

“그래, 윤재하!”

말하는 태도가 마치 당연한 듯 자연스러웠다.

윤재하는 어색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래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나?

친구가 되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도? 그는 아직 이 골목도, 이 집도, 이 마을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금 만난 이 소녀는 그 모든 것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

“……왜?”

마침내 내뱉은 짧은 질문에, 해솔은 한순간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러다 이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넌 왠지 조용하잖아? 조용한 애들은 나 같은 애랑 친구 해야 해.”

해솔은 정말로 이유 없이 친구가 되겠다고 말했다.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윤재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친구를 사귈 생각도 없었고,

아직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그러나 해솔은 기다릴 생각도 없이 그의 주변을 자연스럽게 돌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 책 좋아해? 아님 게임? 난 자전거 타는 거 좋아해! 너 자전거 타?”

“……응.”

“잘 탔네! 난 아직 코너 돌 때마다 넘어지거든! 그래도 엄청 빨라. 다음에 같이 타자!”

윤재하는 어쩔 수 없이 소녀의 말에 반응하고 있었다.

자전거 이야기에 자연스레 ‘응’이라고 답한 자신이 낯설었다. 해솔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넌 말수 적은 편이네. 그럼 내가 더 많이 말해야겠다!”

윤재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참으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다가오는 해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도, 왠지 싫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 해솔은 매일같이 윤재하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등교길에도, 하교길에도, 심지어 집으로 가는 골목에서도.

그리고 해질녘이 되면 어김없이 물었다.

“야, 내일도 같이 가자!”

해솔의 존재는 햇살처럼 스며들었다.

처음엔 눈이 부셨지만, 이내 따뜻했다.

윤재하는 조금씩 그 소녀와의 시간이 당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솔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지고, 하늘이 붉게 물든 저녁 무렵이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와 골목길을 감싸고 있었다. 해솔은 재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 나중에도 이렇게 계속 같이 다닐까?”

윤재하는 문득 해솔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가만히 해솔의 옆을 걸으며,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2화: 강해솔이라는 태풍

2화: 강해솔이라는 태풍

햇살이 쏟아지는 운동장,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둥실 떠다녔고, 나뭇잎은 선선한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재하는 체육복을

"햇살이 머무는 순간을 기억해?""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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