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찰청 강력계 형사팀 사무실.
서이건은 창가에 기대어 연신 커피를 들이켰다.
새벽부터 뛰어다녔더니 진이 다 빠졌다.
체포한 용의자는 경찰서 취조실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건은 그런 광경을 익숙하다는 듯 지켜보다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저 자식, 입 열겠냐?"
형사 이철우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죽어도 말 안 할 거 같아. 완전 입 다물고 있잖아."
"그럴 줄 알았어."
이건은 천천히 손가락을 톡톡 튕겼다.
"입을 열게 만들면 되지."
"야, 너 또 감각 쓴다고 하지 마라."
이철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무리하다가 또 감각 과부하 오면 어쩌려고 그래?"
"…"
이건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감각 과부하.
그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센티넬로 태어나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이 언제나 축복인 것은 아니었다.
감각을 극도로 사용하면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고, 신체 기능까지 무너질 수 있다.
그걸 막아줄 유일한 존재가 가이드.
하지만 이건은 가이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니, 필요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뭐, 알아서 할게."
그는 대충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는데?"
"가이드 팀."
이철우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너 진짜로 가이드랑 연결할 생각이야?"
이건은 짧게 대꾸했다.
"명령이 떨어졌잖아."
서울 경찰청 특수 수사팀
경찰청 내에서도 특정 사건을 담당하는 특수 수사팀.
그곳에는 센티넬과 가이드 간의 협력을 관리하는 팀도 존재했다.
이건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유도현.
이 남자가… 내 가이드?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조용히 서이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차가웠다.
마치 상대를 분석하는 듯한 눈.
이건은 왠지 모르게 신경이 거슬렸다.
그는 가이드가 자신에게 들러붙어 감정을 안정시키려 하는 걸 싫어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전혀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이건 형사님."
유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당신의 파트너가 될 유도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딱딱한 말투.
그는 이건과 손을 잡지도 않았다.
이건은 순간적으로 반감을 느꼈다.
내가 가이드랑 연결되는 게 싫은 건 맞지만, 저렇게 거리를 두는 건 또 뭐야?
"파트너라고 부르지 마."
이건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난 가이드 따위 필요 없어."
"네."
유도현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이건은 그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보통의 가이드라면 센티넬과 더 가까워지려 하거나, 최소한 감각을 안정시키려 노력할 텐데…
이 남자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너, 가이드 맞아?"
"그렇습니다."
"근데 왜 센티넬한테 다가오지도 않아?"
"…"
유도현은 가만히 서이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센티넬에게 과한 관심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서이건 형사님은 가이드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존중하겠습니다."
"…"
서이건은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이 가이드, 뭐야?
센티넬을 안정시키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정작 본인과 연결되는 걸 거부하는 듯한 태도라니.
"그럼 너랑 연결할 필요 없겠네."
서이건은 비꼬듯 말했다.
"필요할 때만 하죠."
유도현은 여전히 냉정한 표정이었다.
"…"
서이건은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그의 감각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첫 번째 협력: 용의자 심문
"그럼 첫 임무부터 같이 해보시죠."
유도현이 취조실을 가리켰다.
"에스퍼의 감각을 이용해 용의자의 반응을 분석하면, 심문이 훨씬 쉬워질 겁니다."
이건은 기분이 찝찝했지만, 어쨌든 그와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함께 취조실로 들어갔다.
용의자는 여전히 입을 닫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지?"
이건이 물었다.
유도현은 조용히 용의자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 거짓말할 때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군요."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특정 질문을 받을 때 심박 수가 급격히 변합니다."
이건은 눈을 가늘게 뜨며 감각을 확장했다.
심박, 호흡, 미세한 땀 냄새, 근육의 움직임.
유도현의 분석이 정확했다.
이건은 특유의 초감각을 이용해 용의자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몸이 이미 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네가 거짓말할 때마다 심박 수가 변하는 거, 알고 있냐?"
이건은 의자에 기대어 낮게 속삭였다.
"그리고 지금, 네 손가락이 살짝 떨리고 있어."
용의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거짓말 못 하는 타입이구나."
이건은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선택해. 네 입으로 말할래, 아니면 내가 너의 심장을 읽어낼까?"
유도현은 조용히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서이건이 초감각능력자로서 압도적인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인간하고 협력하는 거, 꽤 피곤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