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왕좌의 그림자, 핏빛 진실

4화: 왕좌의 그림자, 핏빛 진실

아린은 조태후의 처소를 더욱 샅샅이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태후와 박 내관의 대화에서 언급된

‘폐하께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 그녀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그녀는 조태후의 처소는 물론,

과거 궁중에서 오래 일했던 궁녀와 내관들을 찾아다니며 소문과 기록들을 수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린은 궁궐 깊숙한 곳,

오랫동안 닫혀 있던 창고에서 먼지 쌓인 낡은 목함 하나를 발견했다

자물쇠는 굳게 채워져 있었지만, 아린은 첩자로서 익힌 기술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함을 열었다.

함 안에는 빛바랜 서신들과 함께,

갓난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낡은 옷가지와 작은 옥패가 들어 있었다.

옥패에는 ‘이현(李賢)’이라는 이름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린은 순간적으로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현…? 폐하의 함자는 이준(李俊)이신데… 이현은 대체 누구인가… 설마…!’

아린은 떨리는 손으로 서신들을 하나씩 펼쳐 읽어 내려갔다.

서신들은 과거 조태후와 그녀의 친정 식구들이 주고받은 편지들로,

마치 암호처럼 숨겨진 단어들 사이로

태준의 출생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암시하는 내용들이 숨어 있었다.

오랜 시간 꼼꼼히 서신들을 분석한 끝에,

아린은 마침내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태준 폐하께서… 선황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것.

선황은 정비(조태후)를 맞이하기 전, 신분이 낮은 여인과 잠시 인연을 맺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태준이었다.

조태후는 선황의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심과 분노를 품고 있었고,

태준이 태어나자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의 친어머니를 음모로 제거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자,

태준을 자신의 아들로 둔갑시켜 왕위에 앉히는 끔찍한 계획을 실행한 것이었다.

아린은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믿을 수 없는 진실에 충격받았고,

동시에 이 모든 사실이 태준 폐하께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드릴지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폐하… 어머니를… 잃으셨다니… 그것도… 태후 마마의 손에…!’

그녀는 태준 폐하를 걱정하는 자신의 마음이 단순한 임무 수행 이상의 감정,

깊은 연모의 정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폐하… 제가… 폐하의 곁에 있어 드려야 하는데…

이 끔찍한 진실로부터… 폐하를 지켜드려야 하는데…’

하지만 동시에, 아린은 자신이 짊어진 첩자로서의 임무를 잊을 수 없었다.

조태후의 음모를 막고 태준 폐하를 지키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명령이자,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었다.

그녀는 깊은 고뇌 끝에, 지금 당장은 이 비밀을 숨기기로 결심했다.

아직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태준 폐하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태준 폐하를 보호하고, 그가 상처받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주고 싶었다.

며칠 후, 아린은 태준과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어둠 속 정자에는 태준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그의 표정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아린을 자주 만나면서, 그는 그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있었다.

그녀의 침착함과 냉철함, 그리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에서 그는 신뢰를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아린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배려와 걱정은

그에게 낯설지만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왔느냐.”

태준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폐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아린은 정자 앞에 멈춰 서서 예를 갖추었다.

“요즘… 그대와 자주 만나게 되는군.”

태준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이제는 그대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소.

그대의 보고는 언제나 명확하고 도움이 되었으니까.”

그는 아린을 신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린은 태준의 부드러워진 태도와 신뢰가 담긴 눈빛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태준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오늘은… 특별한 보고는 없습니다, 폐하.”

아린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태후 마마께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계십니다.”

태준은 아린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아린의 눈빛에서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그녀를 신뢰하기로 마음먹었기에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주시하도록 하시오.”

태준은 아린에게 몇 가지 일상적인 질문을 건네며 편안한 대화를 이어갔다.

아린 또한 태준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하며,

두 사람 사이에는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태준은 아린과의 대화를 마치고 정자를 나섰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아린은 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녀는 태준에게 거짓을 고해야 하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비밀과 함께,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사랑이 더욱 깊어져 가고 있었다.

5화: 왕좌의 그림자, 핏빛 진실

5화: 왕좌의 그림자, 핏빛 진실

며칠 후, 아린은 조태후의 움직임에서 심상치 않은 기류를 포착했다. 조태후는 은밀히 군사들을 동원하고 있었고, 궁궐 내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