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차가운 남자, 완벽한 상사

1화: 차가운 남자, 완벽한 상사

정서희는 출근과 동시에 늘 반복하는 루틴을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내

오늘 일정과 문서들을 체크했다.

계절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규칙적인 리듬.

그녀가 일하는 곳은 국내 최고 대기업의 본사,

그리고 그녀의 상사는 그 안에서도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가진 남자였다.

이준혁 본부장.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지는 남자.

그의 존재감은 유난히도 선명했다.

완벽한 업무 능력, 냉철한 판단력, 그리고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태도까지.

그는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었다.

그의 비서로 일한 지 이제 막 1년을 넘긴 서희는,

오늘도 변함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서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문을 열었다.

준혁은 여느 때처럼 완벽한 차림새로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검은색 맞춤 정장이 그의 넓은 어깨와 단단한 몸을 감싸고 있었고,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는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깊고 날카로운 눈빛이 문서 위를 스치다가,

그녀가 들어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느릿하게 시선이 옮겨졌다.

서희는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일정 브리핑해드리겠습니다.”

그의 책상 앞에 서서 서류를 펼치는 순간,

은은하게 퍼지는 고급스러운 향이 코끝을 스쳤다.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향수는 묘하게 중독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차분하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더하는 향기였다.

“오전 10시에는 해외 법인과의 화상 회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서희는 매끄럽게 일정을 설명했지만,

눈앞의 남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훑고 있었다.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익숙했지만,

그럼에도 가끔씩 서희는 그의 시선을 의식할 때가 있었다.

“본부장님, 오후 3시 일정이…”

그 순간, 준혁이 가볍게 손을 들어 말을 멈추게 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문서에서 천천히 그녀를 향해 옮겨졌다.

“회의 자료는 준비됐습니까?.”

“네,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출력본도 책상 위에 준비해두었습니다.”

서희가 차분하게 대답하자, 준혁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있어 칭찬이라는 것은 그저 실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짧은 긍정의 제스처 하나에 그녀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린 순간, 서희는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매일 반복되는 긴장감 속에서도,

그녀는 준혁이란 남자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고 있었다.

차가운 태도와 완벽한 외면 속에 숨겨진,

어쩌면 그 자신도 모를 작은 균열들이 신경 쓰였다.

하지만 그 균열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긴 하루가 지나고, 사무실은 적막에 휩싸였다.

야근이 끝난 시간이 이미 늦은 밤을 향해 가고 있었고,

서희는 마지막으로 서류를 정리한 후 준혁의 사무실로 향했다.

책상 위에 정리된 파일들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을 때,

예상치 못한 장면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준혁이 소파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늘 흐트러짐 없는 사람이었다.

피곤해 보인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도록 완벽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남자.

하지만 지금, 그는 왼손으로 미간을 가볍게 누르며 깊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서희는 순간 망설였다. 그냥 조용히 나가야 할까, 아니면 말을 걸어야 할까.

결국, 그녀의 입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본부장님, 괜찮으세요?”

그의 눈이 천천히 그녀를 향했다.

여전히 날카롭고 서늘한 시선이었지만, 그 안에 미세한 피로감이 서려 있는 듯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짧고 단호한 대답.

그러나 서희는 방금 그가 호흡을 조절하려는 듯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도.

그가 말한 ‘아무것도 아니다’는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유지하며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그의 책상을 정리하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놓았다.

“일찍 들어가세요, 본부장님.”

그녀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준혁은 잠시 그녀가 내려놓고 간 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것을 손에 들어올렸다.

그날 밤, 그의 사무실에서는 오래도록 은은한 차 향이 맴돌았다.

2화: 의심과 관찰

2화: 의심과 관찰

정서희는 이준혁 본부장의 비서로 일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그가 얼마나 피곤한지 가늠하기란 여전히 어려웠다. 그는 언제나 완벽한 모습만을 유지했다. 단

"그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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