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희는 고민에 빠졌다.
이준혁 본부장이 쓰러진 이후,
그녀는 그가 무리하지 않도록 조용히 도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완벽을 유지하려 했고, 누구보다 강한 척했다.
그러나 서희는 그가 얼마나 무리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비서로서 상사의 건강을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했지만, 자꾸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단순한 직업정신 때문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서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의 일정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회의 전, 미리 물을 준비해두고,
점심 이후에는 반드시 짧은 휴식 시간이 들어가도록 스케줄을 조정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는 금방 이를 눈치챘다.
"정 비서, 요즘 내 일정이 부드러워졌군요."
준혁은 서류를 넘기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서희는 무심한 척하며 대답했다.
"그저 업무 효율을 고려한 조정입니다. 너무 과로하시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니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깊었다.
서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 사람을 걱정하는 걸까?'
직업적인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문득 회의 중 피곤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쓰렸다.
그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순간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걸까?'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마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그러나 그를 지켜보며 가슴이 조여오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그날 저녁, 서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감정은 위험하다. 나는 그의 비서일 뿐이야.'
그러나 그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혼자 남겨지는 것이 신경 쓰였고, 하루 종일 그의 상태를 살피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그냥 평범한 직장 상사일 뿐이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지만,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서희는 회의실에 미리 들어가 테이블 위에 물 한 병을 올려두었다.
그것이 별것 아닌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작은 변화를 통해 그가 무리하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준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무심코 테이블 위의 물을 집어 들었고,
몇 초간 그것을 바라보다가 서희를 흘깃 쳐다보았다.
"고맙습니다."
그는 짧게 말한 뒤 뚜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서희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긴장한 채 손끝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의 사소한 반응이 신경 쓰였다.
'왜 이렇게 작은 일에도 신경이 쓰이는 거지?'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그녀는 이미 그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서희는 사무실에서 늦게까지 남아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노트북을 닫고 퇴근하려던 순간, 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비서,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오전 10시에 내부 보고, 이후 1시에는 점심 미팅이 있습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대답하자,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잠깐 휴식을 가지시죠. 어제 병원에서도 무리를 피하라고 하셨으니까요."
준혁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서희는 당황한 듯 시선을 피했다.
"이제 제 건강까지 관리하는 겁니까?"
"비서로서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녀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준혁은 피식 웃으며 문을 열고 나갔다.
서희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러나 답을 내리기에는 아직 마음이 복잡했다.
'나는 단순히 비서로서 그를 걱정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 감정이 무엇이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