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가 이륙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정서희는 옆자리에서 조용히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창가 쪽에 앉아 있던 이준혁 본부장은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의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것을 본 서희는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또…’
지난번처럼 그의 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서희는 그의 상태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살폈다.
준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지만, 한 번씩 이마를 손으로 누르며 눈을 감았다.
그의 턱선이 굳어지는 모습에서, 그는 지금 심한 두통을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렸다.
"본부장님?"
서희는 놀라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준혁의 피부는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진 듯, 그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괜찮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단호했지만,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희는 즉시 기내에서 제공하는 물을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본부장님, 숨 천천히 쉬세요.”
그녀는 주위를 살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은 그녀의 손끝으로도 느껴졌다.
그는 물을 받았지만 마시지는 않고,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그대로 멈춰 있었다.
서희는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그의 손목을 잡았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세요. 저를 따라 하시면 돼요.”
준혁은 살짝 눈을 떴다.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본능적으로 그는 그 손을 놓지 않았다.
비행기는 여전히 창공을 가르고 있었다.
기내의 엔진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가운데, 두 사람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며 준혁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준혁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손이 생각보다 작고 따뜻했다.
그 온기가 몸을 타고 퍼지면서, 그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괜찮다니까.”
그가 힘겹게 말을 했지만, 여전히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서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비행기 안, 좁은 좌석에서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은 남들이 보면 분명 이상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상태였다.
“조금만 더요. 아직 불안정해 보이세요.”
서희는 그가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 손을 놓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이상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힘이 살짝 달라졌다.
애초에는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잡은 것 같았지만, 지금은…
마치 스스로 놓지 않으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준혁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희는 순간적으로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어딘가 깊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비행기는 순항 중이었고,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두 사람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그에게는 지금 이 공간이 너무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
서희는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
“본부장님, 이제 좀 괜찮으세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손을 빼려 하자, 준혁이 갑자기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만 더… 잡고 있어도 되죠…?"
서희의 심장이 철렁였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을 느끼고 다시 손을 가만히 두었다.
서희는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그녀는 그의 대답을 알 것만 같았다.
비행기는 계속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