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혼란스러웠다.
출장 이후, 그와 서희 사이의 거리는 확실히 달라졌다.
그녀는 여전히 업무적으로 완벽했고, 그를 배려하는 태도도 변함없었다.
그러나 준혁은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한 번도 그런 웃음을 보여준 적 없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남았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조차 정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정리할 틈이 없었다.
준혁은 며칠째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업무를 이어가고 있었다.
중요한 계약 체결을 앞두고, 준비해야 할 서류도 많았고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겹쳤다.
그날도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며 야근을 하고 있었다.
시계가 이미 새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커피잔 몇 개가 놓여 있었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째 문서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피로가 극에 달해 있었지만,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순간, 그의 시야가 흔들렸다.
머리가 울리듯 아파왔고, 손끝이 저릿하게 떨렸다.
숨을 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발끝이 흔들리며 그대로 앞으로 무너졌다.
혼자 야근을 하던 서희는 마지막으로 서류를 정리하고 퇴근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본부장실에서 들려온 둔탁한 소리에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본부장님?”
놀란 마음에 문을 열었을 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준혁이 보였다.
“본부장님!”
서희는 급히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본부장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서희는 그를 흔들며 간절하게 불렀다.
“이준혁! 제발…!”
한참 후, 그는 힘겹게 눈을 떴다.
“……괜찮아요.”
그의 목소리는 극도로 나직하고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서희의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생각이에요?!”
서희는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본부장님이 쓰러질 때마다 얼마나 걱정되는지 아세요?!”
준혁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제발… 제발 몸 좀 챙기세요.”
그녀는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저, 본부장님 좋아해요.”
준혁의 눈이 커졌다.
서희는 울면서 계속 외쳤다.
“좋아한다고요! 그러니까 본부장님이 쓰러질 때마다 너무 걱정돼서… 너무 힘들다고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지만, 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준혁은 여전히 어젯밤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희의 눈물,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좋아한다’는 말까지.
그녀의 감정이 그렇게 터질 줄 몰랐다.
그는 아직 이 감정이 무엇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이미 너무 깊이 들어와 버렸다.
사무실 문이 조용히 열렸고 서희가 들어왔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어딘가 단호해 보였다.
“어제 일은… 죄송합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업무적인 선을 넘는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본부장님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는 천천히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이건 제 사직서입니다.”
준혁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녀는 사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말했다.
“더 이상 본부장님 곁에서 일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서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