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미치겠네."
한서연은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 상사에게 받은 메시지는 간단했다.
[내일까지 수정해서 다시 보내줘.]
‘왜 항상 퇴근 시간에 이러냐고...’
출근길부터 팀장이 트집 잡을 것 같은 예감이 들더니 역시나였다.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클라이언트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맞추느라 진을 뺐고, 이제야 겨우 퇴근길에 올랐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도시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서연은 편의점에 들러 대충 저녁거리를 사서 집에 갈 생각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럴 때일수록 단 음식이 필요했다.
‘오늘은 초콜릿이나 사 가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편의점 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이었다.
“드디어 찾았다.”
낯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연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을 또렷이 응시하는 남자가 서 있었다.
‘뭐야, 누구야?’
그 남자는 키가 크고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금빛이 도는 은발에, 날카로운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이목구비. 그리고…
푸른빛이 도는 깊고 신비로운 눈동자.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저기… 누구세요?”
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남자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나는 레온. 그리고 너는 내 운명의 반려.”
“네?”
“드디어 찾았어.”
그는 너무나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서연에게는 모든 게 황당하기만 했다. 운명의 반려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죄송한데요, 저 아세요?”
“응.”
“……아니, 내가 아니라면?”
“아니야, 맞아. 너야. 나의 운명의 반려.”
서연은 황당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이 남자는 누구지? 길에서 처음 본 남자가 운명이라며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아, 저 바빠서 가볼게요.”
서연은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하지만 레온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잠깐만. 어디 가?”
“집이요.”
“그럼 나도 같이 가야겠네.”
“네???”
순간 서연은 귀를 의심했다. 대체 무슨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 거야? 같이 가다니? 어이없음에 말문이 막힌 순간, 레온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운명의 반려와 함께하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무슨 드라마 너무 많이 보셨나요?”
“드라마? 그게 뭐야?”
“……”
이 남자, 뭔가 이상하다. 아니, 굉장히 많이 이상하다.
‘설마 신종 사기꾼인가? 아니면 요즘 유행하는 몰래카메라 같은 건가?’
서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혹시 카메라가 숨겨져 있는지 확인해 보려 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냥 이 남자가 이상한 거였다.
“이봐요. 난 처음 보는 사람이랑 같이 안 가요. 그러니까—”
그 순간이었다. 레온이 손을 가볍게 흔들자, 서연의 앞에 있던 편의점 문이 스르륵 저절로 열렸다.
“……”
서연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방금 뭐였지? 바람이 불어서 열렸나? 아니, 자동문이 아니라 수동문인데? 분명 누군가 밀어야 열리는 문이었다.
“그럼 가자.”
레온은 여전히 태연했다. 마치 이런 일이 일상적인 것처럼.
“잠깐만요… 방금 그거… 당신이 한 거예요?”
“응.”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그리고 또 한 번 손을 흔들자, 이번에는 편의점 안에 있던 물건들이 살짝 떠올랐다. 한순간이었지만, 서연은 분명 봤다. 물건들이 공중에 떠오르는 걸.
‘이거… 꿈 아니지?’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레온은 그런 서연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난 다른 차원에서 왔어. 그리고 넌 내 운명의 반려야.”
서연은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남자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의 말이 진짜라면?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 지금부터 완전히 뒤집힐 거라는 걸 서연은 예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