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핸드폰을 들고 잠시 망설였다.
지금까지 실패한 무수한 시도들,
어이없는 상황.
하지만 이번엔 달라 보였다.
헬스장에서 몇 번 마주쳤던 사람.
어쩌면, 정말 자연스러운 만남일지도 모른다.
‘그래, 한 번 더 믿어볼까? 원래 이상형 만나는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잖아.’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고 메시지를 답장했다.
“좋아요. 언제 만날까요?”
토요일, 지영은 헬스장에서 번호를 물어본 남자를 만나러 나왔다.
‘이번엔 진짜 자연스러운 만남일 거야!’
기대를 품고 카페에 도착했지만, 남자는 다소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지영 씨! 오래 기다리셨죠?”
“아,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운동은 자주 다니세요? 지난번에 헬스장에서 꽤 열심히 하시던데.”
지영은 민망한 듯 웃었다.
“사실 꾸준히 하는 편은 아닌데, 가끔씩 가요. 주로 가벼운 유산소 정도?”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운동 꾸준히 하시면 몸도 가뿐해지고 좋아요.
아, 그런데 지난번에 지영 씨가 드시는 단백질 쉐이크를 봤는데…
어떤 제품인지 기억나세요?”
“네? 그냥 마트에서 파는 건데요?”
“아, 그거 성분이 별로 안 좋은 제품이에요.
사실 저는 단백질 쉐이크 판매업체에서 영업 담당을 하고 있는데,
정말 좋은 제품을 하나 추천해 드리려고요.”
라고 말하며 남자는 명함을 내밀었고,
그때서야 지영은 그 남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영은 순간 얼어붙었다.
‘이럴 수가 있나?
이렇게 날씨가 좋은 토요일 오후에
지금 나한테 단백질 쉐이크를 강매하고 있는 건가?’
그녀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저는 원래 먹던 거 마실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황금 같은 토요일,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하다니…
지영은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참으며 카페 문을 나섰다.
'내가 이럴려고 토요일을 반납했나…'
하늘은 맑고 태양은 눈부셨지만, 그녀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실망과 허탈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영업 미팅이라니, 그것도 단백질 쉐이크라니!
그녀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끊었던 담배가 다시 생각나는 지영이었다.
카페를 나서는 순간, 지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짐했다.
‘나 송지영, 포기를 모르는 여자지!’
‘이번엔 봉사활동이다!’
‘책임감 있는 남자를 만나려면 봉사하는 곳이 제격이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연애 상대로도 좋다고들 하잖아.’
토요일 이른 아침, 지영은 봉사 센터 앞에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어색하지만 설렘도 조금 있었다. ‘오늘은 진짜 괜찮은 사람을 만나겠지?’
하지만 현실은… ‘책임감 있는 남자를 만나려면 봉사하는 곳이 제격이지!’
“아, 저희 센터는 남녀 구분해서 따로 봉사해요.”
기대했던 만남은커녕, 이성과 한 마디도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
봉사활동 내내 지영은 무거운 박스를 옮기고,
채소를 다듬고, 서류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남자 봉사자들과 접점을 만들 기회를 찾았지만,
모두들 각자 맡은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 쉬는 시간에 커피를 타서 들고 가던 중,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이 커피에 설탕 넣으셨어요?"
지영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자연스러운 대화가 시작되는 건가?!
"네! 조금 넣었는데요. 당도 떨ㅇ…"
남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저는 당뇨 때문에 설탕 안 들어간 거 마시는데… 괜찮아요. 그냥 물 마실게요."
지영은 입을 떼지도 못하고 남자가 가는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건 아니잖아…’
그녀는 화장실 거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나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남자 만나러 봉사활동까지 온 거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니 현타가 밀려왔다.
그녀가 진짜 선행을 하러 온 건지, 아니면 단순히 연애 상대를 찾으러 온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래서 되는 게 없나 봐…’
한숨을 쉬며 다시 활동장으로 돌아가 봉사활동을 마무리하는
지영의 마음이 한층 무거워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