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까지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지영은 녹초가 되어 소파에 쓰러졌다.
“정말 내 연애 인생은 끝난 걸까…”
지영은 7년 전에 끊은 담배가 다시 생각날 정도로 답답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결국 한숨을 깊게 쉬며 편의점으로 향했다.
익숙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 삼각김밥 코너로 향했다.
‘그래, 참치마요면 된다. 이게 내 유일한 위로야.’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집고 계산대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삼각김밥을 툭하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거랑… 체인지 일미리 주세요.”
그 순간, 편의점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지영은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추리닝 차림에도 완벽한 남자.
그저 편한 차림일 뿐인데도 마치 모델처럼 보였다.
‘ 뭐야, 모델이야. 뭐야…’
쓸데없이 길고 균형 잡힌 다리, 넓은 어깨, 깔끔한 얼굴선.
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 남자가 가까이 지나치는데, 그녀는 아주 익숙한 향을 맡았다.
러쉬 더티 스프레이 향.
‘아니,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인데…?’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물 한 병과 간단한 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별거 아닌 행동인데도 괜히 멋져 보였다.
편의점 직원이 지영에게 말을 걸었다.
“네? 담배 뭐 찾으셨죠?”
지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담배요? 무슨…?^^”
당황한 지영은 얼른 말을 바꿨다.
“이 삼각김밥만 얼마예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계산을 마친 지영은 편의점 문을 나섰다.
하지만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편의점 맞은편 골목 전봇대에 살짝 몸을 기대어 삼각김밥을 뜯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온통 방금 본 그 남자에게 쏠려 있었다.
‘우리 동네에 저런 귀한 분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남자가 계산을 마치고 편의점 문을 나섰다.
지영의 시선이 그를 쫓았다.
그는 무심하게 걸어가면서도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혹시 헬스장에서 본 적 있나? 아무래도 익숙한 것 같애’
지영은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이런 외모의 남자를 본 기억은 없었다.
그 남자는 길을 건너더니 반대편 작은 골목으로 사라졌다.
지영은 삼각김밥을 씹으며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아니… 뭐야. 대체 누구야?”
강렬한 인상의 남자를 만난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온 지영은 현관문을 열며 외쳤다.
“엄마! 나 진짜 너무 정말 멋진 남자를 봤어! 나 이 남자랑 결혼할 것 같아…!”
부엌에서 TV를 보던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래, 제발 자만추해서 결혼하고 여기를 나가라. 엄마도 힘들어 죽겠다~”
지영은 신발도 벗기 전에 가방을 식탁 위에 던지고 엄마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아니 진짜야. 이번엔 느낌이 왔다니까?
완전 모델 같은데 추리닝을 입어도 분위기가 남다르고,
게다가 좋은 향까지! 이건 운명이야, 운명!”
엄마는 팔짱을 끼고 지영을 빤히 쳐다봤다.
“그 남자한테 말이라도 붙여봤어?”
“…어… 그냥… 그분이 편의점에서 샐러드를 샀어.”
“그래서? 네가 샐러드 사셨냐고 물어봤냐고?”
“아니… 그냥 잘 지켜봤지…”
엄마는 한숨을 쉬며 TV를 다시 틀었다.
“딸아, 네가 30년 동안 쌓아온 연애 스킬이 ‘지켜보기’냐?”
지영은 소파에 드러누우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 엄마! 나도 알아! 근데 너무 멋있어서 말을 못 걸었다니까!
한 번만 더 보면 꼭 말 걸 거야.”
엄마는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
“그래, 한 번 더 보면 말이라도 걸어봐라.
자만추도 좋지만 그것도 노력해야 성사가 되는 거야. 알겠어?”
지영은 두 손을 모아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제발, 한 번만 더 보게 해 주세요…”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침대로 기어들어간 지영은 이불을 돌돌 말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진짜 또 볼 수 있겠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지영은 기대에 찬 얼굴로 잠에 들었다.
‘설마, 또 볼 수 있을까…?’
생각보다 강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지영은 오랜만에 뭔가 기대되는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베개를 끌어안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운명 같은 만남은 이제 시작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