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지영은 새벽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고민한 결과를 정리했다.
[오만 년 만에 찾아온 기적, 송지영의 데이트 계획]
전시회 → 근처 맛집 → 디저트 카페
→ 산책 코스 → 즉흥 일정 추가 가능. 완벽!!!
하지만 곧바로 불안이 몰려왔다.
‘너무 과한가? 혹시 전시회 싫어하면 어쩌지?
맛집은 너무 분위기 좋은 곳 말고 캐주얼한 곳이 좋을까?
아, 몰라 그냥 가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하자!’
그렇게 자신을 다독인 후, 드디어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영이 도착한 곳은 작은 미술관 앞.
강지훈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편안한 니트와 슬랙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 캐주얼한 모습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났다.
‘추리닝도 잘 어울리더니… 저렇게 입어도 멋지네…’
지영은 속으로 감탄하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지훈은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지영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심쿵, 웃는 거 뭐야… 반칙이지…’
그렇게 둘은 자연스럽게 전시회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돌던 중, 지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훈 씨는 평소에 이런 전시회 자주 보러 오세요?”
“음… 가끔요. 주로 집에서 작업하는 시간이 많아서, 기분 전환할 때 오곤 해요.”
“작업이요?”
지훈이 잠시 망설이더니, 솔직하게 답했다.
“웹툰 그려요.”
지영은 깜짝 놀랐다.
“정말요? 와, 대박! 어떤 작품 하세요? 혹시 유명한 거?”
“아직 대중적으로 엄청 알려진 건 아니고요,
그래도 고정 팬층이 있는 작품이 몇 개 있어요.”
지영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어요! 전 웹툰 정말 좋아하거든요.”
지훈은 웃으며 물었다. “어떤 장르 좋아하세요?”
“로맨스! 근데 자만추 스타일 이야기면 더 좋죠.”
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만추?”
지영은 당당하게 말했다.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운명 같은 만남을 믿는 거죠.”
지훈은 흥미롭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오늘 우리 만남은 자연스러운 건가요?”
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니, 이 남자 이런 식으로 공격하면 반칙이라니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음… 그렇죠. 동네에서 우연히 몇 번 마주쳤으니까…
자연스러웠다고 해도…?”
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자주 마주치겠네요?”
‘이거 설레서 못 참겠다…아 오늘 잠 다 잤네…’
지영은 부끄러움을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그… 그럴지도요!”
전시회를 마치고 근처 맛집으로 이동했다.
분위기는 한결 편안해졌다.
음식을 주문한 후, 지영이 물었다.
“그런데 웹툰 작가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지훈은 생각하는 듯하다가 답했다.
“보통 오전엔 스토리 구상하고, 오후부터 밤까지는 작업해요.
마감 기간엔 거의 밤새기도 하고요.”
“우와… 완전 프리랜서네요. 부럽다.”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사회성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지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하, 그래서 저랑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고 계신 거군요.”
지훈이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답했다.
“그러게요. 이러다 보면 사회성이 다시 회복될지도.”
‘이 남자… 진짜 내 심장 흔들어놓는 데 재능 있다니까.’
지영은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앞으로 자연스럽게 자주 보면서 훈련시켜드릴게요.”
식사를 마치고 카페로 이동했다.
디저트를 고르던 지영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혹시 단 거 좋아하세요?”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실 별로 안 좋아해요.”
‘이 남자, 솔직 담백하기까지 하잖아..’
“헐, 충격. 저는 단 거 없으면 못 사는 사람인데.”
“그럼 저는 커피, 지영 씨는 디저트. 그리고 나눠 먹기.”
‘이 남자, 현명해…’
지영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자연스럽게 나눠 먹기로 하죠.”
지영은 지금 이 순간 로또 당첨자도 부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