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마주친 이후로,
이상하게도 지영은 자꾸 그 남자를 보게 되었다.
편의점 남자.
이름도 모르는 편의점 남자라고만 생각했는데,
마치 운명처럼 동네 곳곳에서 마주치는 것이다.
월요일 아침, 회사 가려고 나서는데 그가 반대편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
‘헉, 러닝까지 한다고? 역시 자기관리 철저한 남자…’
수요일 저녁, 친구와 떡볶이 가게에서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가게 문이 열리더니 그가 들어왔다.
‘잠깐, 우리 동네 사람이야? 설마 이 가게 단골?’
금요일 밤, 퇴근 후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누군가 냉동실 문을 열었다.
지영은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
강지훈이었다. 이번에도 그녀를 못 본 채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었다.
이건 운명인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반복인가?
지영은 몇 번을 고민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저기… 우리 혹시 계속 마주치는 거 같은데, 동네 주민이세요?”
그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차분했다.
“…네?”
“그러니까, 저번에 편의점에서도 뵌 것 같고, 카페에서도 본 것 같은데…”
강지훈은 한참을 생각하는 듯했다가,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한데, 저는 기억이 잘...”
지영은 순간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뭐야, 나만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는 지영이 충격받은 표정을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저 이 근처 살긴 해요. 사실 얼마 전에 이사 왔거든요.
자주 마주쳤다면, 진짜 동네 주민인가 보네요.”
“…아, 네. 저도 여기 살거든요.”
지영은 순간 신기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이사 오셨다고요? 그래서 요즘 자주 보였나 봐요.”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동네가 낯설어서 적응 중이에요. 근데 이 동네 꽤 괜찮네요.
조용하면서도 맛집도 많고.”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지영은 괜히 아이스크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문득, 이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여기 근처에 떡볶이 맛있는 집 아세요?”
강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저번에 갔던 곳이 있는데… 혹시 ‘마녀분식’ 아세요?”
“거기 저도 자주 가는데요! 진짜 맛있죠?”
“네, 로제 떡볶이 진짜 맛있던데.”
“완전 인정! 혹시 튀김은 뭐 드셨어요?”
“난 김말이. 근데 거기 야끼만두도 괜찮더라고요.”
그렇게 음식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지영은 놀랐다. 말 몇 마디만 나눴을 뿐인데, 어쩐지 대화가 편안했다.
‘이게… 자만추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영은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 남자와의 대화가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괜히 설레는 것도 같고,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아직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으로 문득 떠오른 생각에, 지영은 돌아서며 강지훈을 향해 살짝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에 또 마주치면 인사해요!"
강지훈은 잠시 놀란 듯하다가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죠."
지영은 괜히 부끄러워져서 빠르게 발걸음을 돌렸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다음에 또 마주친다면… 그땐 자연스럽게 인사해도 되겠지?
하지만 예상보다 빨리 그 기회가 찾아왔다.
일요일 오후, 지영은 동네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강지훈.
지영은 반가운 마음에 살짝 미소를 지으려다,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굳어버렸다.
길고 찰랑이는 머리, 세련된 옷차림, 우아한 분위기까지.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지영은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뭐야… 여자친구 있는 거야?’
그 남자는 자연스럽게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자리를 잡았고,
지영은 괜히 책장을 넘기면서도 신경이 쓰였다.
‘아니야, 그냥 친구일 수도 있잖아. 그렇지? 그렇다고 해줘…!’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시선이 자꾸 강지훈과
그 여자로 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