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영은 카페 아르바이트 유니폼을 정리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점심 피크타임이 끝난 후라 한가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손님이 몰려 정신이 없었다.
"다영아, 테이블 5번 주문 나왔어!"
"네!"
쉴 틈도 없이 주문을 받고 커피를 만들던 다영은,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손이 멈췄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단정한 슈트 차림,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익숙한 얼굴.
"…잠깐, 저 사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카페로 들어와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날카로운 턱선,
선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면서도
시선을 이리저리 흘리지 않는 태도까지.
너무나도 낯익었다.
그가 눈을 들어 다영과 눈이 마주친 순간,
다영은 본능적으로 테이블을 잡았다.
"도건우?"
건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의자에 편안히 몸을 기대었다.
"오랜만이야, 다영아."
다영은 순간 모든 감각이 멈춘 것 같았다.
도건우.
그녀의 첫 연애 상대.
그리고 가장 허무한 이별을 맞이했던 남자.
5년 전.
유다영과 도건우는 같은 대학교에서 만났다.
다영은 1학년 새내기였고,
건우는 경영학과 2학년.
그들은 도서관에서 처음 마주쳤다.
"저기, 이 자리… 비었나요?"
다영이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건우는 책에서 눈을 떼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같은 테이블에서 공부를 하다가,
몇 번 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었다.
다영이 어렵게 경제학 과제를 하고 있을 때,
건우가 무심히 도와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 부분 잘못 이해했어. 이렇게 접근해야 돼."
"아… 고마워요!"
"음, 나한테 커피 한 잔 사면 돼."
그렇게 몇 번을 마주치고, 몇 번을 함께 밥을 먹고,
몇 번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어느 날, 비 오는 캠퍼스에서 건우가 말했다.
"너 나 좋아하잖아."
다영은 깜짝 놀라며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건우는 그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하니까 사귀자."
그렇게 시작된 연애.
하지만 그들의 연애는 길지 않았다.
3개월.
처음엔 모든 게 좋았다.
건우는 무심한 듯 다정했고, 항상 다영을 챙겼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씌워주고, 과제가 많을 때면 밤새 도와주고,
알바가 힘들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초콜릿을 건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다영은 건우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는 항상 다영의 일상에 스며들었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날, 건우가 갑자기 말했다.
"우리, 그만하자."
그때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너무 단호한 얼굴로
"나 미국 간다. 그렇게 됐어."
라고만 했다.
다영은 그때 아프게 깨달았다.
건우에게 나는 그저 스쳐 가는 사람일 뿐이었구나.
그리고 5년 만의 재회.
건우는 다영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커피 하나 줄래? 네가 추천하는 걸로."
다영은 굳어졌다.
지금 이 남자가 5년 전에 이유도 없이 자신을 떠났던
바로 그 도건우가 맞단 말인가?
그런데 태도는 너무나도 태연했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신 다영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물었다.
"니가 여기 왜 왔어?"
건우는 커피를 받으며 짧게 대답했다.
"널 보러."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다영이 당황해하는 사이, 카페 밖에서 건우의 고급 슈퍼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제야 다영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건우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컵을 들었다.
"말 안 했었나?"
"뭘?"
"나, H&K 그룹 후계자야."
"……뭐?!"
다영은 커피를 쏟을 뻔했다. H&K 그룹? 대한민국 최고 기업 중 하나인 H&K 그룹?!
"…잠깐, 너 재벌이었어?!"
"응. 몰랐어?"
다영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가 사귀었던 남자가 재벌 3세였다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 당당하게 자신의 앞에 나타나
"널 보러 왔다"
고 말하고 있었다.
도건우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널 떠나고 나서도 단 한 순간도 널 잊은 적 없었어.”
심장이 뛰었다. 그런데… 이 감정은 놀람 때문일까,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