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가 본격적으로 다영의 주변에서 계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취업 스터디를 하러 가려고 집을 나섰더니,
길 건너에서 건우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너… 설마 기다린 거야?"
건우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마침 같은 방향이길래."
카페에서 알바를 끝내고 나오면, 건우의 차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너, 나 몰래 스토킹하냐?"
건우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스토킹이 아니라, 정당한 구애야."
다영은 황당해하며 외쳤다.
"이 미친놈이! 나 아무 감정도 없거든?!"
건우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다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거짓말. 너 아직도 날 좋아해."
다영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상황이 어이없었지만, 동시에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다음 날, 취업 스터디를 마치고 나오자 건우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터디 끝났네. 점심은 먹었어?"
"너 왜 자꾸 나타나는 거야?"
"널 보고 싶으니까."
"집 앞까지 따라오면 경찰 부를 거야."
건우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녁은 같이 먹자. 이건 합법적인 제안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건우는 다영을 위해 차 문을 열어 주었다.
다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건우의 눈빛은 진지했다.
"싫으면 거절해도 돼. 하지만 한 번만 기회를 줘."
다영은 한숨을 쉬며 건우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다정한 눈빛, 그리고 변함없는 자신감.
하지만 5년 전과는 달리 조금은 더 진지한 기색이 엿보였다.
"너 진짜… 웃긴 사람이다."
"고맙다. 나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해주는 것 같아서."
다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건우는 그녀를 재촉하지도 않고,
그저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서 기다렸다.
그의 태도는 확실히 예전과 달랐다.
다영은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 번만이야. 한 번만 밥 같이 먹어준다."
건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아. 한 번이지만, 난 그 한 번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할 거야."
다영은 한숨을 쉬며 건우를 따라 걸었다.
그가 5년 만에 돌아와서 이렇게까지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
그냥 단순한 미련? 아니면 그 이상일까?
그날 저녁, 건우는 조용한 레스토랑에서 다영을 대접했다.
분위기는 어색했지만, 건우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넌 어떻게 지냈어?"
"그냥… 백수로 살고 있었지. 취업 준비는 한다고 하는데, 쉽지 않더라."
"너한테 연락할까 고민했어. 하지만 네가 날 싫어할 것 같았거든."
"그런 걸 이제 와서 말하면 뭐해."
다영은 투덜댔지만, 건우의 표정은 진지했다.
"난 후회했어. 널 두고 간 거. 하지만 이제는 다시 기회를 잡고 싶어."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다영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건 네 마음이지, 내 마음은 달라."
건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네 마음을 돌려놓을 때까지, 계속 노력해볼게."
그의 확신에 찬 태도에 다영은 당황했다.
건우는 변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더 깊어진 느낌이었다.
다영은 한숨을 쉬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네 마음대로 해봐. 하지만 난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건우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그 도전, 받아들이지."
다영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5년이나 지나서 이제 와서."
건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네가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진심이었던 사람이니까."
다영은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
"너, 그런 말 아무한테나 하진 않겠지?"
"그랬으면 네 앞에 이렇게 서 있지도 않아."
건우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후회했어, 다영아. 그때 내가 널 떠난 게 잘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떠난 순간 알았어. 그런데도 널 다시 찾을 용기가 없었어."
다영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건우는 예전과 달랐다.
더 솔직했고, 더 깊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 너한테 다시 다가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걸."
다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에 흔들리는 자신이 싫었다.
"네가 원하는 대답, 쉽게 안 나올 거야."
건우는 빙그레 웃었다.
"괜찮아. 네가 날 밀어내지 않는 한, 난 기다릴 수 있어.
우리 딱 3개월만 계약 연애를 해보자."
건우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